사무실이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 - 2
Literally,
장소가 행복을 줄까? 내가 장소로 인해서 행복을 얻는 정도라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겠지 그냥 어느 직장에서건 만족하는 삶을 가지고 벅찬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사무실을 얻지 않고 공유오피스를 전전하는 경제적으로 부족한 1인 기업가의 넋두리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난 집에서 공유오피스로, 또는 업무적으로 출장을 갈 때 차에서 음악보다는 윌라를 통해 세이노의 가르침을 듣는다. 책으로 700페이지 정도가 되고, 윌라 오디오북으로는 몇 시간 인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 듣는 것 같다. 그중 "세이노의 가르침 中 사업을 할 때 알아야 할 것들 (1)"을 제일 좋아한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폼 잡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옮기면, "나의 강력한 조언: 절대로 폼 잡는 짓 하지 말라. 사무실은 일하는 곳이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면 좋겠지만 사업 초기에 그럴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손님도 올 텐데 그래도 좀 꾸며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짓은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사업 방식일 뿐이다. 수십억 수백억 자본이 있어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등 가운데가 뜨끔한다. 대학원 때는 교수님의 방이 정말 부러웠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천연물책들과 다른 벽에는 졸업논문이 가득 꽂혀있었다.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만있어봐" 하며 가져온 알 수 없는 일본어로 된 책을 보여주실 때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첫 번째 직장에 취업했을 때, 대표님의 방에서 보이던 그 풍경, 14층 높이에서 올림픽아파트가 내려다보였다 가까이 롯데타워도 보였고, 뷰라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거기서는 보였더랬다. 책은 없었지만, 넓은 공간 그 넓은 공간이 멋져 보였다. 검은색 작은 스메그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주며 이야기를 시작할 때 앉던 책상의 높이가 맞지 않는 멋 적은 느낌까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신만의 공간에서 오는 당신이 쌓아온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멋있었겠지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 또한 멋진 사무실에서 인테리어를 잔뜩 해놓고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세이노의 말마따나, 사업초기에 그럴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맞는 말이다. 첫 직장의 대표가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서 일을 했을까? 월요일마다 일을 나가는 영바이오텍의 과장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야 우리 원래 사무실 봤나? 거기 정말 썩었어, 심각했어,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가 몰라 돈 많이 벌면 좋은 데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과장님의 말에 동의한다.
현재 내가 지내는 사무실이다. 군포산업진흥원 1층에 오픈스페이스다. 넓은 책상에 높은 층고,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책 혼자 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6월부터 입주해서 현재까지 지내고 있다. 저기 보이는 책상 자리 하나를 내가 쓰는 것이고 오픈스페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짐을 많이 놓고 다니진 못한다. 일할 때면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주무시는 분들이 코를 골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왜 자꾸 사무실 타령이냐고? 지난번도 그렇고 2회로 나누어 쓸 정도냐고? 눈치가 보여서 그렇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물어본다 사무실이 어디냐고, 지난주 금요일엔 HPLC기기를 판매하는 대표님이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대학원 때 거래하던 곳인데 잘 지내느냐고 우석대를 갔다가 황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했더란다. 현규는 사업 시작했다고, 뭐 그랬다 한다 이야기하시며, 화분이라도 보낼걸 그랬다 하신다. 이야기를 잘하다가 갑자기 화분 소리에 멋쩍어졌다.
난 원래 처음에만 해도 뭐 그래도 사무실이야 괜찮아, 공유오피스면 어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내가 창피해졌다. 일이 있었다. 올해 3월에 수출바우처 신청을 했었고, 현장 평가를 공유오피스에서 진행했다. 군포가 아니라 판교 운중동에 있던 공유오피스였다. 그 심사위원이 대뜸 하는 말이 공유오피스냐고 여기서 사업을 하냐고 하였다. 평가받는 입장에서 차마 따지거나 기분 나쁨을 표출할 순 없어서 배시시 웃고 말았다. 저 말을 하면서, 법인은 왜 유한책임회사로 냈느냐고 묻길래 부트스트래핑이 어쩌고 저쩌고 늘어놓으려다가 참고 말을 안 했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어찌 저지 평가는 끝났고, 1주일 후에 그 심사위원 사무실에 갈 일이 생겼다. 가서 보니 2-3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책상을 놓고 혼자 사무실이라고 지내고 있었다. 아씨 뭐야? 그래, 그때 나에게 공유오피스에서 지내세요?라고 묻는 말은 본인의 자격지심에서 왔던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내가 정말 저렇게 착하게 생각을 했느냐고? 아니? 아직도 그 심사위원은 재수 없다.
6월에 1층에 입주하고, 5-6층에 사무실 공간이 있어서 올라가 보았다. 정확히는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올라가서 잽싸게 보고 내려왔다. 복도 형태로 사무실이 붙어있었고, 중간엔 탕비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고, 나도 1층에서 성과를 많이 쌓고, 매출도 쌓은 후에 저 사람들처럼 올라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무실엔 익숙한 산양유 분유 박스가 겹겹이 쌓여있는 것도 보았다. 아 저 사람도 나처럼 건강식품을 을 하는구나 그럼 나도? 나도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5-6층 사무실 공간 지원사업이 있어서 냈고, 서류가 되었다. 9월 초에 발표를 하고 이게 잘 되면 입주를 하게 될 것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 내가 들어갈 때가 됐는가? 난 아직 공유 오피스가 더 어울리지 않는가? 아니 가서 계획서에 쓴 것처럼 사람도 뽑고 더 발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 문득 11평 사무실 인테리어 이런 것들 검색하며, 월넛이니 체리우드니 이런 것을 보고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윌라를 틀었을 때, 세이노의 가르침 中 사업을 할 때 알아야 할 것들 (1)이 나올 차례였고, 사무실에 대한 세이노의 단상을 들었다. 내가 그런 걸 인테리어라는 걸 따질 형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첫 직장 주영엔에스 대표가 장난스레 몇 번이나 이야기하였던 말도 같이 스쳐 지나갔다. "야 고기 더 시켜, 와인을 더 먹든가? 우리 이제는 그래도 돼" 라며 웃던 대표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때 옆에 상무님이 그렇지 이제는 괜찮죠 하면서 서로 웃더라. 그때 그분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그래 그때 그 말은 농담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힘들었던 지난날을 보내오고 난 후에나 할 수 있는 말이었나 보다,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아니 그 달려온 그 깊은 터널이 언제까지 어디까지나 어두웠을까? 내가 지나는 지금 이 터널이 끝이 있을지 어두운 게 터널이 어두운지 내 눈이 어두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 또한 나중에 그런 말을 할 수 있길 바라본다. 아니 그날을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