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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초이 Aug 26. 2023

높다면 낮게, 낮다면 높게

저 마다 뻗어나가는 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

네 생각에 높아 보이면, 오르기 힘들어


새로운 사업을 영위하신 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가끔씩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것은 아니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참석을 하라고 하거나, OO파트너스로 비롯되는 그런 VC/AC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지난 7월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어느 모 IR 행사

시작 시간은 2시, 도착 시간은 1시 / 1시간 전인데, 먼저 오신 대표님들이 계신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떠한 기대를 하면서 이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증명받기 위해서, 내 생각이 맞았는지 누군가에게 어떠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오셨을까?

오늘은 대표님들에게 있어서는 자기 마음, 머릿속에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다른 사람들의 세상 속에 활공시키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날이다.


Youtube EO에서 봤었던, 어떤 내용인지 어떤 사업분야인지 생각은 안 나지만 몇 번의 실패로 힘들어져서 캐리어에 걱정과 짐을 담아 가지고 다니며, 찜질방에서 지내면서 출퇴근을 하셨다던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나 결국에는 투자를 받거나, 매출이 상승하거나 하여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증명받았다.


조용하고, 약간은 무겁지만 따뜻하기도 한 것 같은 이날의 공기에서 문득 저 장면이 들렸었다.



발표시간은 5분, 질문시간은 15분


내가 뭐라도 된다고, 심사를 하는가? 나는 창업을 해본 적도 없고 저기에서 피칭하시는 분들처럼 내 인생을 걸고 사업체를 만들고 꾸려 본적도 없다. 다만, 현재 회사에서 협업할 부분이 있는지 그로 인해 창출될 가치가 있는지 그 시야에서 바라볼 뿐이다.


발표 시간 5분은 상당히 짧다. 대부분의 대표님들이 5분 내에 모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발표시간 5분이 종료되고 마이크에 소리가 기는 순간엔 아쉽다는 표정과 잘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섞여 이내 공기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괜찮다.


심사역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하나, 하나씩 주고받으며, 서로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심사역들끼리 아쉬워하는 대표님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질문을 진행한다. 대표님은 처음에 잡혀온 고양이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가, 질문 2-3개가 왔다 가면 이내 곧 온화하게 풀어지며, 표정이 밝아진다.


철없이 어릴 때 참석했다면 이런 자리에서 혓바닥은 이내 뱀으로 변해 가시를 내뱉으며, 치우쳐진 의견을 내며, 내 말만 맞다고 이야기하면서 으시댔을 것만 같다.



나는 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Demo day 또는 IR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다. 내가 저 자리에서 가치를 인정 받고 싶다. 나는 어떠한 것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Youtube에서 대표들이 성장한 스토리를 들으며, 같이 울고, 저기 저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감정이 이입이 되어 울컥하였지만 삼켰었다.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아있었고,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을 반복하던 그때쯤, 친한 동생 B를 만났다. 술 마시면서 얼핏 지나가던 그의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D-6XX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뭐냐고, 분양받은 아파트에 들어갈 것이냐고 물으니, 자기가 퇴사를 할 날짜라고 했다.


죽는 날을 받아놓고 일하는 회사원이라니, 나도 회사원으로서 죽고 싶었다.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죽여 버리고, 대표로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B는 D-day에 자기가 뭘 할 것은 아니라 했다. 그러나, 현재가 너무 싫고 이렇게 지낸다면 본인마저도 삼켜져 버릴 것 같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나인지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모습이 내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언제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며칠이나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까? 주말에는 나로서 존재할까? 토요일은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요일은 아니다. 일요일은 월요일에 출근할 생각에 사로잡혀 40%만 나로만 존재하고, 하루의 한편엔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4일만 나로 존재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에서는 겨우 두 달 남짓한 시간이다. 그럼 이게 내가 맞는가? 난 이것에 만족하는가? 이 삶이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인가?


처음에는 외부에서 원하는 자아에 나의 내면의 자아가 충돌하는 것에 대하여 삼켜진다는 표현조차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모래성에 파도가 조금씩 부딪히며 조금씩 흩뿌려지는 것처럼, 내가 흩뿌려지는 것 같다. 거기서 어떠한 고통도 없다. 그냥 조금씩 사라지니까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어느새 어떤 순간에 내가 생각나서 보면 난 없어지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대표님들도 다 사람이었고, 나도 사람이다.

저기 저 흐르는 강물을 건너다 죽은 사람도 있지만, 산 사람도 있다. 난 내 내면의 무서운 강물을 건널거다.


옷방 한켠에 위치한 GOWITHLAB의 사무실

 산이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다.


내가 저 산을 넘지 못하는것 저 산이 높다고 내가 내 자신을 압도시켜버린것, 그 더러운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들어낸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면 하는것이고, 그렇지 못한다고 하면 못하는것이다.


좋아하는 시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길 - 고은" 에서,

그래, 길이 있다. 그 길은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는 길이다.

그 길은 나도 갈 수 있다.


작게나마 하루에 한 걸음,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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