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 2
2024년 추석, 첫째가 일곱 살 때 있었던 일이다.
명절마다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대전으로 간다.
부모님 댁 근처에 야경 보기 좋은 곳이 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달을 보러 나갔다. 첫째는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어머니를 통해 첫째가 빈 소원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소원으로 "엄마가 일 하러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코가 찡했지만, 삼켰다.
"엄마가 일 하러 안 갔으면 좋겠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7살이 될 때까지 모두 엄마와 함께 있었다. 유치원을 데려다줄 때, 유치원에서 데리러 올 때, 모든 순간을 엄마와 함께 했다.
2024년이 될 때, 나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창업을 하게 되어 정말 신이 났다.
새벽 5시에 출근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돈은 되지 않지만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봤으며, 내고 싶어서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사업계획서를 몇 편이고 썼다.
3월이 되어, 와이프는 학교로 출근을 했다. 성남에서 원주까지 차로 운전하여 출퇴근을 했다. 출근은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였으며, 퇴근은 2시간이 걸리던 날이 있다고도 했다. 중간에 타이어 바람이 빠진 적도 있었고, 눈이 펑펑 내려 고속도로에 갇힌 적도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어, 와이프는 6시 30분에 내가 내려준 커피를 들고 출근을 하였으며, 나는 아이들 아침 준비를 하고, 7시 20분에 깨워 밥을 먹인 뒤 8시 30분에 등원을 시켰다. 하원은 4시 아이들 데려다 저녁을 먹이고 뭘 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보면 와이프가 퇴근했다. 그럼 나는 책상에 앉아 다시 사업계획서를 썼다.
이것을 몇 개월 반복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사업은 돈은 벌리지 않고, 나가는 돈만 있었다. 그 동안 지내던 공유오피스를 정리를 했다. 월 45만 원이 내심 부담스러운 돈이었다. 그간 썼던 사업계획서 중 하나가 되어 군포에 작은 사무실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하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지내던 공유오피스에서 서운한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현규 님, 등하원 때문에 사업 접으시는 거예요?"
아닌데, 그게 아닌데 아니라는 설명보다는 화가 먼저 났다.
"내가 여기 안 나오면 사업 접는 거예요?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세요?"
"아뇨.. 어디 다른 데 가시는 거예요?" "군포요? 거기 멀지 않아요?" 별로 그렇게 말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군포로 갔고, 사업인지 뭔지 모를 것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사무실이 생겨서 신이 났다. 당근에서 이케아에서 사고 싶던 검은색 게이밍 책상을 3만 원에 파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가져왔다. 어찌나 무겁고 부피가 크던지 차 트렁크에 겨우 들어갔다. 사무실에 가족들을 다 데리고 가서 같이 조립하며 행복했다. 이때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있었다. 내가 가정에 돈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지금에야 알았지만, 사업의 본질이 자본을 굴려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이었다. 꼴랑 2500만 원의 자본으로 굴려봐야 20%를 가져온다 하여도 500만 원이 다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좀먹고 있었다. 힘들었다. 답답하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사실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물어봤다. "잘 팔려?" "잘 돼?" 하는 말이 잘 안 되지? 등신 머저리 같은 녀석 내가 사업하지 말랬지?라고 들렸다.
언젠지 모르겠는데, 와이프와 대판 싸웠다.
힘들겠지 너도, 나도 힘들다. 너도 나처럼 등하원 시키고, 집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사업해 봐라고 말했다. 지쳤고, 포기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크게 실패한 적이 없었다. 나는 취직이던, 대학원이던 뭐던 간에 어쨌든 잘되든 말든 되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아니 아니라는 것보다 내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지는 생각이 들었다. 1년만 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밤마다, 주말마다 다 해도 안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첫째 소원이 와이프가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 그만 두자, 하지 말자 당장 월급 나오는 데를 가자. 그렇게 정리했다.
사업체는 타인에게 넘겨버렸으며, 지금도 아침마다 쿠팡이며,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 들어가서 판매량을 버릇처럼 확인한다. 포기했지만 실패하진 않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싶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좋아한다. 실패를 보며 자신의 도전하지 않음을 잘한 것이라며 안도한다. 날 가지고 안주거리,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이 많았다. 본인들은 시도 조차 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마치 방구석에서 휴대폰으로 세계경제와 정치를 논하는 고등학생 같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온다면 도전할 것이다. 이번 1년간의 일을 통해 많이 배웠다. 배웠으면 되었다. 그렇게 첫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