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통증을 가슴에 '정박'시키세요.

내가 보고 경험했던것을 당신도 미리 알았다면...

by 닥터 키드니

"인턴 선생님, 여기 환자 '정리' 좀 해주세요. 심장 중환자실 6번이에요."


의사가 보고 겪었던 과거의 중요한 경험은 의사의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 경험 중에서도 첫 경험, 첫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기에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힘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의사라는 타이틀이 아직은 낯설지만, 두툼한 겨울 외투는 허용되는. 3월 초의 어느날이었다. 처음으로 환자의 죽음을 '정리'하게 되었다. 아침 루틴을 정리하고 밥 한술 뜨려던 찰나였다. '네' 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 맨밥만 겨우 넘겼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재바르게. 심장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호출을 받았던 심장 중환자실 6번방 환자는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 그녀를 보내지 못한 그녀의 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는 아직은 앳된 아이들. 엄마의 손길이 한참은 더 필요해 보이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매였다. 울음이 범벅된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커튼을 쳤다. 그곳에 서서 남매의 높고 낮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눈물로 세수를 했다.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과 시뻘게진 두 눈을 들킬까 봐 얼굴도 들지 못했다. 커튼 사이 남겨진 틈으로 초보 의사의 서툴고 떨리는 손길이 무례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커튼을 단단히 고쳤다.



그녀를 정리해야 했다. 환자에게 꽂혀 있던 굵은 혈관들을 없애야 한다. 오른쪽 어깨의 중심 정맥카테터와 왼쪽 서혜부 근처의 관상동맥조영술 카테터를 제거하는 것이 내가 맡은 임무다. 카테터를 뽑으니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나온다. 여러 장의 거즈를 말아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도록 꾹 눌렀다. 슬쩍 열어보니 더 이상 피는 나지 않지만, 굵었던 혈관의 두께만큼이나 큰 구 구멍이 나있다. 준비되었던 바늘로 구멍을 메웠다. 마지막이 될 엄마의 모습만큼은 온전한 얼굴과 몸의 형태. 원래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그녀의 몸을 원래의 모습대로 돌려놓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정리를 마치고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150 센티미터 정도의 아담하고, 살집이 있는 4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작은 키와 통통한 체격. 흔히들 말하는 아줌마. 보통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어린 남매를 놔두고 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처리하지 못한 처방도 정리해야 했고, 인턴 방으로 돌아와 전자 차트를 켰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의 이름은 이미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블 클릭.


시작은 오래지 않았다. 그녀의 증상은 전날 낮부터 시작되었다. 명치 부위의 불편함으로 동네 약국을 찾았고, 몇 가지 약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소화 불량쯤으로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불편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참을성 대가이듯, 그녀 역시 자신의 증상쯤은 대수롭지 않게 참아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저녁 6시 30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고, 저녁 식사를 위해 바삐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밥솥에 불을 지피고 밥이 되기 만을 기다리던 그녀는 결국 주방에서 의식을 잃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급성 심근 경색이었다. 응급 관상동맥시술로 꽉 막힌 혈관을 발견했다.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했지만, 골든 타임을 지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후로 환자의 죽음을 셀 수 없이 많이 봤지만, 죽음을 정리했던 첫 환자의 경험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처음의 기억은 이렇게 강력하다. 의사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정 질병을 경험하면, 비슷한 환자는 같은 질병을 생각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렇게 이전에 경험했던 기억이 남아 모든 것을 그것에 연관시키는 경향을 정박 효과 (anchoring biases)라고 한다. 배가 부두에 닻줄을 매고 정박하는 것을 anchoring이라고 하는데, 배가 이렇게 부두에 매 쳐 있는 것처럼 그것에 매달리는 현상이다.


내게는 가슴 통증이 그렇다. 첫 환자의 기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 남아 나를 채근한다. 중년의 여성이 명치의 불편함, 그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가슴 통증은 환자나 의사의 가슴에 정박해야 할, 어떤 경우에도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증상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쉬지 않는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때 심장 근육이 뛰기 위해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 관상동맥이다. 심장 주위에 있는 관상동맥은 크게 3가닥의 혈관으로 되어 있다. 이 3개의 관상동맥 중 어느 하나라도 막히면 심장 근육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중단된다. 관상동맥이 꽉 막히면 심근 경색증을, 일시적으로 좁아지면 협심증을 의심한다.


가슴이 아프다고 내원하는 환자를 보면, 의사는 가장 먼저 통증의 원인이 관상동맥으로 인한 심장 질환이 아닌지 확인한다. 이들에서의 전형적인 가슴 통증은 가슴에 코끼리 한 마리가 올라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코끼리가 가슴을 누르는 것과 같이 뻐근하게, 조이거나, 터질 것 같은 통증이다. 턱, 목, 등 또는 팔로 뻗치는 방사통이 동행하기도 한다. 때때로 무력감, 식은땀, 구역, 구토감,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이 동반되며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다.


협심증의 경우 2~5분 정도로 통증의 지속기간이 짧지만, 30분 이상 지속되면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진행함을 의미한다. 이런 관상동맥질환은 우리 몸이 힘들만한 상황에서 유발된다. 추운 계절에 등산을 하거나 운동 중에 발생한다. 과로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증상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 건강한 사람이 심근 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다.'라고 말하지만,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질병은 발생한다. 관상동맥질환은 랜덤이 아니다. 관상동맥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관상동맥질환의 발병도는 증가한다. 남성에서는 45세 이상, 여성 55세 이상이다.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관상동맥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관상동맥질환의 가족력도 중요하다. 여기서 가족력이란 직계 가족 중 남성에서는 55세 미만, 여성 65세 미만에서 관상동맥 질환이 발병한 것을 말한다. 이 밖에도 흡연자, 고혈압, 당뇨, 이상 지질혈증, 비만 역시 관상동맥질환이 관상동맥 질환의 주요 위험인자이다. 이런 위험 요소를 여러 개 가지고 있을수록 관상동맥 질환의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관상 동맥 질환은 의료진의 개입 시간이 늦어질수록 예후가 나쁘다. 특히 급성 심근 경색의 경우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이내여야 한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심장 근육은 괴사되고, 영원히 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은 힘이고, 생명 연장이다. 관상 동맥 질환의 발생 확률이 높은 당신에게 가슴 통증, 불편감이 있다면 절대로 참으면 안 된다. 인내심은 그럴 때 발휘하는 게 아니다. 골든 타임은 2시간이다. 만사 제쳐두고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 가야 한다. 그곳에 가면, 당신은 다른 응급 환자를 제치고 가장 먼저 봐야 하는 1순위 환자가 된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애초에 관상 동맥 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상시에 위험인자들을 관리해야 한다.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관상 동맥 질환의 위험 인자 중 나이, 성별, 가족력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나이를 되돌릴 수 없고, 성별을 바꿀 수 없으며 나의 근원인 가족을 거부할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야 한다. 금연은 기본이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다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적절한 강도, 규칙적인 운동은 혈압과 당뇨, 고지혈증을 개선하고, 비만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운동은 그 자체로 심장을 튼튼하게 하여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우리가 현재를 살 수 있는 건 심장이 뛰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힘차게 뛰어야 할 심장을 위해 운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내일은 또 하루 늙으니까. 당장 오늘 시작해야 한다.


처음으로 정리했던 환자의 죽음.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에 정박되어 있다. 내가 보고 겪었던 첫 경험을 그녀가 미리 알았다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가슴에 정박되어 있는 이 경험을 당신의 가슴에도 정박시키고 싶다.


※ 어쩌면 제가 만든 흉통에 관한 영상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youtu.be/RRRgCw4Hf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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