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탐색전
결혼식 뒤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민수.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합니다. 침대에 누워 방 불을 껐지만, 그의 얼굴은 스마트폰 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죠. 민수의 폰에는 오늘 어렵게 알아낸 서윤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띄워져 있습니다.
이제부터 민수의 뇌는 본격적인 ‘정보 사냥’ 모드에 돌입합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주말에는 뭐를 할까?’, ‘혹시 만나는 다른 남자는 없을까?’ 민수의 엄지손가락이 서윤의 피드를 빠르게, 때로는 아주 천천히 훑어 내려갑니다. 사진 한 장, 해시태그 하나가 모두 단서입니다. 민수는 지금 단순히 사진을 구경하는 게 아닙니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모아 ‘서윤’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맞추고 있는 것이죠.
흥미로운 사실은, 민수가 실제로 서윤을 만나 대화할 때보다 지금 이 순간, 뇌 속에서 더 강력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바로 도파민(Dopamine) 때문이죠. 많은 분이 도파민을 ‘쾌락의 호르몬’이라고만 알고 계시지만, 사실 도파민의 진짜 역할은 ‘탐색(Seeking)’과 ‘기대(Anticipation)’입니다.
신경과학자 자크 판크셉(Jaak Panksepp)은 포유류의 뇌에 ‘탐색 시스템(Seeking System)’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시스템은 우리가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 목표를 향해 다가갈 때 가장 활발하게 작동합니다. 사자가 먹잇감의 냄새를 맡고 추적할 때 나오는 흥분감이, 지금 민수가 서윤의 3년 전 게시물까지 스크롤을 내릴 때 느끼는 감정과 생물학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뜻입니다.
민수는 서윤의 사진첩에서 그녀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공감대 형성 가능), 1년 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취향 파악), 그리고 최근 주말마다 등산을 간다는 사실(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때마다 뇌에서 도파민 샤워를 경험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하나씩 획득할 때마다 뇌의 보상 회로가 반짝이며 켜지는 것이죠.
그런데 민수의 스크롤이 갑자기 멈췄습니다. 3주 전,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서 찍은 사진 때문이에요. 사진 속 서윤은 웃고 있는데, 맞은편 좌석에 누군가의 옷소매가 살짝 걸쳐져 있습니다.
‘누구지? 친구인가? 아니면... 남자?’
순간 민수의 뇌는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확실성’은 민수의 몰입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뇌과학적으로 도파민은 결과가 확실할 때보다, 예측이 불가능할 때 더 많이 분비되거든요. 이를 ‘보상 예측 오류(Reward Prediction Error)’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결과가 긴가민가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더 갈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민수는 이제 탐정으로 빙의합니다. 댓글을 하나하나 뒤지며 옷소매의 주인을 찾기 시작하죠. 친구가 남긴 "오빠랑 갔어?"라는 댓글에 서윤이 "아니, 사촌 동생이랑!"이라고 답글을 단 것을 확인하는 순간, 민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엄청난 쾌감을 느낍니다. 불안이 해소될 때의 보상은 평온할 때의 기쁨보다 훨씬 강렬하니까요.
하지만 이 SNS 탐색전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이상화(Idealization)’의 오류죠. SNS는 편집된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 가장 예쁜 모습만을 전시하죠. 민수의 뇌는 서윤이 보여주지 않은 ‘빈칸’들을 자신의 상상으로,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채워 넣습니다.
그녀가 올린 책 사진 한 장을 보고 ‘지적이고 차분한 사람일 거야’라고 단정 짓거나, 조카와 찍은 사진을 보고 ‘모성애가 강하고 따뜻한 사람일 거야’라고 확신해 버리는 식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도 부르는데, 하나의 장점이 다른 모든 면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현상이죠.
민수는 지금 실제의 서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서윤의 정보들을 재료 삼아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완벽한 판타지’와 사랑에 빠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새벽 2시. 내일 출근을 생각하면 이제 자야 하지만, 민수는 폰을 놓지 못합니다. "딱 하나만 더 확인하고..." 이것은 민수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뇌의 전두엽(이성적 통제)이 도파민 시스템(충동적 탐색)에게 항복했기 때문이죠.
결국 민수는 서윤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정독하고, 그녀가 좋아할 만한 대화 주제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에야 잠자리에 듭니다. 꿈속에서도 그녀의 피드는 계속 업데이트될지 모릅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는 그 열망. 그것은 분명 사랑의 강력한 엔진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본 것은 그 사람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편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으며 부딪쳐봐야만 비로소 시작됩니다.
자, 민수는 이제 그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이 데이터를 가지고 실전에 나설 차례입니다. 과연 그의 데이터 분석은 적중할까요? 아니면 헛다리만 짚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