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의 등장이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결혼식장의 뷔페는 늘 소란스럽기 마련입니다. 접시와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왁자지껄한 안부 인사가 섞여 묘한 활기를 만들죠. 그 소음 속에서 민수는 방금 전 결혼식에서 마주쳤던 그 여자, 서윤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연어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민수의 뇌 속에서는 짧은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가서 말을 걸어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다시 마주칠 때를 기다릴까?’ 10년 지기 친구인 신랑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자. 남자의 뇌는 사냥꾼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현대의 사냥꾼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종 방아쇠를 당기기 주저합니다. 거절당했을 때의 무안함, 주위 사람들의 시선 같은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민수의 계산기를 박살 내는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훤칠한 키에 딱 떨어지는 네이비 슈트를 입은 한 남자가 서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남자는 꽤 자신감 있어 보였고, 서윤은 그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실 그저 예의 바른 미소였을지도 모르지만, 민수의 눈에는 호감의 신호로 보였습니다.)
순간, 민수의 머릿속에서 ‘안전한 접근’이라는 선택지는 사라졌습니다. 심박수가 빨라지고 손에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여자네’ 정도였던 서윤이, 갑자기 ‘놓치면 평생 후회할 여자’로 격상되었습니다.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가 욕망을 더 키운 것이죠.
흥미롭게도, 남자의 뇌는 경쟁자가 등장하는 순간 작동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수컷에게 경쟁자의 등장은 곧 번식 기회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원시 시대에 사냥감이나 짝을 다른 수컷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곧 유전적 죽음을 뜻하는 것이죠. 그래서 남자의 뇌는 경쟁 상황에 놓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급격히 올리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쟁에 뛰어들도록 세팅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희소성 원칙(Scarcity Principle)’과 ‘라이벌 효과(Rival Effect)’로 설명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수록 그 대상을 더 귀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백화점 세일 기간에 "마지막 한 개 남았습니다"라는 점원의 말에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옷을 덥석 집어 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연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서 있는 이성은 그저 ‘매력적인 대상’이지만, 누군가가 말을 거는 순간 그 이성은 ‘경쟁이 치열한 인기 있는 대상’으로 변모합니다. 다른 수컷이 그녀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가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의 뇌 안에서는 도파민 시스템이 비상벨을 울린 것입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저 녀석이 채가기 전에 빨리 가!"
이 긴박함은 전두엽의 이성적인 판단(‘지금 가면 좀 어색하지 않을까?’)을 마비시키고, 편도체의 본능적인 행동(‘일단 가서 내 존재를 알려야해’)을 부추깁니다.
저는 종종 사랑에 빠진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과정이 경매장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언뜻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그렇다고 사람이 물건이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지만 단지 비유하자면) 아무도 입찰하지 않는 물건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뭔가 하자가 있나?' 싶어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누군가 팻말을 드는 순간, 갑자기 그 물건이 탐나기 시작하고 덩달아 입찰 팻말을 들게 됩니다. 심지어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값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행동 경제학에서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부르지만, 연애 초기에는 이 저주가 강력한 추진력이 되기도 합니다.
민수는 네이비 슈트의 남자보다 자신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졌습니다. 이것은 서윤을 향한 사랑도 있지만, 수컷으로서의 승부욕도 한 몫했습니다. 강렬한 사랑의 시작은 종종 이런 오해와 본능의 착각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민수는 접시를 든 채 자연스럽게(혹은 자연스럽고 싶어 하며) 서윤의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네이비 슈트 남자가 잠시 음료를 가지러 간 틈을 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습니다.
"신부 친구분이시죠? 아까 사진 찍을 때 뵈었습니다."
만약 네이비 슈트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민수는 샐러드드레싱을 고르는 척하며 서윤의 주변을 맴돌다 타이밍을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경쟁자의 등장은 민수라는 사냥꾼의 본능을 깨웠고, 그를 소극적인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쟁심이 사랑의 시작을 앞당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원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로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 경쟁심에 눈이 멀어 쟁취한 트로피는 막상 손에 쥐고 나면 금방 흥미를 잃기 쉽습니다. 도파민은 '원하는 과정'에서 분비되지, '얻고 난 이후'까지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지금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이유가 서윤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 있던 네이비 슈트 남자에게 지기 싫어서인지 헷갈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라이벌 효과' 덕분에 두 사람의 접점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민수의 접근에 서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눈빛은 호의적이었습니다. 네이비 슈트 남자는 사실 서윤의 사촌 오빠였다는 사실을, 민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그 오해 덕분에 민수는 사랑이라는 레이스의 출발선에 설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뇌는 가끔 이렇게 엉뚱한 이유로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그 엉뚱한 용기가 때로는 운명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내가 본능에 속하서 마음에도 없던 사람(여성)에게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혹은 상대방(남성)이 그저 나를 경쟁의 일부로 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