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현지인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애초에 사파에는 트레킹이 궁금해서 갔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 도시를 소개하는 티비 프로에서 사파를 소개한 것을 보았는데 거기서 사파를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가 휴가로 오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좋아하는 곳이라니.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그가 가는 숙소랑 트레킹 코스는 내가 가는 곳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사파 시내에 가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키가 더 작고, 까무잡잡한 아주머니들이 달라붙어서 호객 행위를 한다. '하루 트레킹 얼마에 가요' 혹은 '대마초 있는데 사실래요?'라며. 트레킹을 예약도 하지 않고, 정보도 전혀 알아보지 않아 그들을 따라갈까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앱을 통해서 1박 2일 트레킹 코스를 예약했다.
1박 2일 코스에 10만 원 정도 들었다. 밥 세끼, 숙소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가이드와 함께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에겐 나름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사파 시내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사람들에 비하면 비싼 값인걸 고려하면 어쩌면 내가 호구 잡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은 안전이 우선이고, 그래도 에이전시와 세계적인 앱을 끼고 있으면 아주 조금이나마 안전해질 수 있으니 안전을 돈으로 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침 9시에 가이드 '린'과 만나 인사를 하고 출발했다. 비수기라 손님이 나 밖에 없어서 어색한 1대 1 투어로 진행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 어설픈 영어로 통성명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숲으로 들어갔다.
전날 비가 조금 와서 길이 조금 젖어있었다. 그래서 길이 꽤 험했는데 나는 발목 위에까지 올라오는 방수 트레킹화를 신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반면 가이드 '린'은 욕실에서 신을 법한 투명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자신의 마을에서 아침에 출발해서 3시간 동안 걸어왔고, 나와 함께 4시간 이상 더 걸어야 하는데 그런 신발로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트레킹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내가 오히려 그녀 옆에서는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속 빈 강정이라는 게 들키는 기분이었달까.
베트남의 알프스라는 얘기를 듣는 사파지만 막상 걸어보면 생각보다는 평범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산세와 비슷하다. 특히 농사를 짓는 풍경이나 계단식 논에 벼가 자란 모습은 전에 경남 거창 근처에 글램핑 갔을 때 본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인인 마크 주커버그에게는 이 모습이 신선했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크 주커버그 씨가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가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3시간 정도를 걸었다.
중간에 여행자를 위한 식당에서 현지식을 간단히 먹고 30분을 더 걸으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가이드 '린'이 자신의 집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잠깐 자신의 집에 들르자고 해서 들린 마을이다. 체력은 좋지 않지만 뒤처지는 게 싫어서 무리해서 최대한 빨리 걸었더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자신의 집에 들른 듯했다.
현지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기회가 되면 구경하고 싶은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녀의 집은 마치 20년 전쯤 우리나라 시골에 있을 법한 집이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어서 무척이나 더웠는데도 따뜻한 차를 내줬다. 방은 두 개밖에 없고 부엌은 밖에 있는 듯했다. 그녀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나는 그냥 앉아서 기다렸는데 하도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계속 흘렀다. 한국에서는 땀이 조금만 흘러도 힘든데, 머나먼 타국에서는 에어컨과 선풍기를 아예 포기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조금 버틸만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가이드의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더 걸어서 오늘 묵을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비어있는데 마침 내가 간 날에는 대만과 베트남 다른 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 묵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농활'을 하러 온 대학생들이다. 거기에 묵으면서 근처 마을에 사는 모든 학생들을 불러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적으면 5살 많으면 18살 정도로 보이는 이 학생들이 이렇게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함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촉망받는 직업인 가이드를 하기 위함이다.
영어 수업도 철저히 가이드를 하기 위한 영어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중간에 끼어들어서 영어로 롤플레잉 하는 것을 도와줬다. 사파에 온 여행자 컨셉으로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는 역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이드를 하기 위한 영어를 가르치면 어머니들이 싫어하실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여기서는 방학 때 이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몇 시간을 온다고 했다. 역시 상식이란 환경에 따라 바뀌는 법이다. 어쩌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영어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입시만을 위한 영어를 왜 배우는 걸까...'라고.
게스트 하우스는 에어컨도, 따뜻한 물도, 와이파이도 없었다. 샤워하고 나오니 협탁 위에 둔 수건 위에는 바퀴벌레가 한 마리.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모기 천국.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차분했다. 어차피 힘들 것이라고 예상을 해서 그런가. 아무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어느 쪽이든 간데 나는 이 순간을 받아들였고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밤 저녁식사 자리에서 친해진 농활 지도 교수 '톰'과 수다를 떨었다. 그는 이 봉사 활동을 주도해서 10년 동안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여건에서도 매년 돌아와서 그저 이 시골 속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남들에게도 자상할 줄 아는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은, 똑똑하지만 오만하지 않은 그런 눈빛은 누구나 쉽게 빨아들인다. 나도 '톰' 같은 어른으로 익어갈 수 있을까.
둘째 날은 별 다른 일정이 없었다. 트레킹을 세 시간 더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 마중 나왔다. 새로운 것들을 보면서 가는 길은 재밌어도 같은 풍경을 보며 돌아가는 길은 노동에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행 초반이라서 그런지 1박만 트레킹을 했음에도 온몸이 고되고 힘들었다. 나중에는 5박, 6박씩 트레킹을 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봐도 이 때는 조금 힘들었다. 아마 아직 한국 도시 물이 덜 빠져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노이에서 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간 사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신비로웠다. 늘 산 근처에 산 한국 사람으로서 대단히 다른 풍경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세계일주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구석 중에 구석에 있는 마을에 가서 열정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대학생들과 수업을 받는 아이들을 봐서 그런지 이상하게 마음에 더 남는다. 당분간은 갈 일이 없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오겠지라는 마음을 담고 떠났다. 다음에 오면 그 수업을 받던 아이들이 나를 가이드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