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다른 여자를 보는 진짜 이유

정신과전문의가 들려주는 사랑의 뇌과학 안정기 편 (5)

by 정신과 의사 Dr MCT

나른한 일요일 오후 3시. 민수와 서윤은 3년째 단골인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익숙한 커피 향, 익숙한 재즈 음악, 그리고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서로의 얼굴. 두 사람 사이에는 편안함이라는 공기가 흐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화는 뚝뚝 끊기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깁니다. 평화롭지만, 지루합니다.


그때, 카페 통유리 밖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한 여성이 지나갑니다. 화려한 스타일링,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민수의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따라 움직입니다. 0.5초의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민수의 심장은 ‘쿵’ 하고 반응했습니다.


“오빠, 뭐 봐?”


서윤의 예리한 목소리에 민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립니다.


“어? 아냐, 아무것도. 그냥 밖에 본 거야.”


민수는 태연한 척 커피를 마시지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그리고 깊은 자괴감에 빠집니다. ‘나 서윤이 진짜 사랑하는데, 왜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반응하지? 나 권태기인가? 아니면 내가 쓰레기인가?’




민수가 죄책감을 갖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수컷 포유류의 뇌에 각인된 본능입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부부가 닭 농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수컷이 ‘새로운 대상’을 마주했을 때 성적 반응성이 급격히 회복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진화론적으로 수컷의 뇌, 특히 도파민을 생성하는 복측 피개 영역(VTA)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낯선 암컷’이라는 시각 정보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민수가 낯선 여성을 보고 반응한 것은 ‘마음의 변심’이라기보다, 망막에 ‘새로운 시각 정보’가 입력되자 뇌간이 반응한 생물학적 반사 작용에 가깝습니다. 무릎을 치면 다리가 올라가는 반사 신경처럼, 사랑의 깊이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뇌의 기계적인 반응인 셈이죠.




그렇다면 왜 민수의 심장은 서윤에게 더 이상 ‘쿵’ 하지 않을까요? 서윤이 매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서윤이 보여주는 모습이 일관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설렘'이라고 말하는 감정은 주로 도파민에 의해 발생합니다. 그러나 도파민은 보상이 주어졌을 때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보상이 주어졌을 때 분비됩니다. 연애 초기만큼 서윤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만큼 '예상치 못한' 모습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애 초기, 서윤은 민수에게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오늘 어떤 옷을 입고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민수의 뇌는 도파민을 폭발시켰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서윤의 표정, 말투, 데이트 코스는 민수의 뇌에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학습되었습니다.


뇌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예측 가능한 보상)에는 흥분하지 않습니다. 도파민(설렘)이 멈춘 건,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너무나 완벽하게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안정감(세로토닌)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민수는 평생 설렘 없이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쿨리지 효과를 따라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나야 할까요? 물론 둘 다 정답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아서 아론(Arthur Aron)은 ‘자아 확장 이론(Self-Expansion Theory)’을 통해 해법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히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연애가 지루해지는 건 상대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더 이상 당신을 통해 내가 확장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솔루션은 뇌를 속이는 것입니다. 뇌가 원하는 건 ‘새로운 여자’가 아니라 ‘새로운 자극’ 그 자체입니다. 흔히 말하는 ‘공포 영화 보기(흔들다리 효과)’도 방법이지만, 더 강력하고 건강한 방법은 ‘공동의 도전’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새롭고’, ‘흥미진진한’ 활동을 배우거나 수행할 때, 뇌는 그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과 도파민을 파트너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합니다. 수동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땀 흘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 활동이어야 합니다.




민수와 서윤은 뇌의 도파민 회로를 재가동하기 위해 각자의 전략을 실행해야 합니다. 민수는 ‘맛집 탐방’이나 ‘영화 관람’ 같은 익숙한 데이트를 줄여야 합니다. 대신 ‘둘 다 못하는 것’을 시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클라이밍, 테니스, 도예, 혹은 낯선 언어 배우기 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포인트는 두 사람 모두 ‘초보자’가 되어 서로의 서툰 모습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서윤은 민수의 뇌가 학습한 ‘서윤 알고리즘’에 오류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늘 입던 스타일을 과감하게 바꾸거나, 민수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보여주는 식입니다. 민수의 뇌가 “어? 내가 알던 서윤이가 아니네?”라고 인식하는 순간, 뇌는 정보 처리를 위해 다시 도파민을 분비하고 서윤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민수나 서윤, 한쪽이 아니라 양쪽에서 같이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생물학적인 반응 자체는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의 원리를 알고 반대 방향의 노력을 한다면 꺼진 도파민의 불꽃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오빠, 저기 빨간색 홀드 밟아! 오른쪽!”


다음 주말, 민수와 서윤은 맛집 대신 실내 클라이밍 센터를 찾았습니다.


난생처음 매달린 암벽 위에서 민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엉거주춤합니다. 밑에서 서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합니다. 팔이 후들거리고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지만, 민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정상의 홀드를 터치하고 내려옵니다.


“와, 대박! 오빠 진짜 멋있었어!”


바닥에 내려온 민수에게 서윤이 달려와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서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화장은 조금 지워졌으며, 머리는 헝클어져 있습니다. 평소의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고 있는 서윤을 보는 순간, 민수의 뇌 속 VTA 영역이 다시 불을 뿜습니다. 익숙한 정장이 아닌 운동복을 입고, 함께 땀 흘리며 성취감을 공유하는 이 순간. 민수는 쿨리지 효과 따위는 잊어버린 채, 눈앞의 파트너에게서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설렘’을 발견합니다. 오래된 연인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함께 손을 잡고 뛰어들 ‘새로운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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