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읽으며 '이게 진짜 실화일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빅터 프랭클이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내용들이 지금 현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는 와중에도 글귀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다.
지금 힐링을 느낀다는 건 내가 요즘 힘든가 싶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
p17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중략)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처음 프랭클의 책을 읽었을 때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극한의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고통에 대한 현실도피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과의 가장 가까운 대면이었다.
결국 프랭클은 니체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니체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p120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몇몇 수감자들은 풀려날 것이라는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미래가 깨질 때 모든 정신력이 상실하며 삶도 상실하게 된다.
프랭클은 수감자들과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아내를 떠올리며 아내와 나눌 대화를 상상하며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감히 수용소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군 생활이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 전역 날짜만을 기다리며 지내다 보면 시간이 멈춰지는 경험을 한다.
너무 지루하고, 불운한 감정이 계속 싹튼다.
그러나 전역 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의미를 찾아보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란?
프랭클이 말하는 '실존적 공허'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단군 이래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현대에서도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 습관이 아니라, 왜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왜 글을 쓰는가?
단순히 습관과 의무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목적 때문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프랭클이 말하는 '로고테라피'일 것이다.
로고테라피의 개념은 단순하지 않다.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정리한 로고테라피의 정의는 이렇다.
로고테라피 : 일, 사랑, 고통 이 세 영역에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찾는 의미
결국 삶의 의미란 매일 우리의 선택이다
오늘 누구를 만날 것인지, 무엇에 시간을 쏟을 것인지, 어떤 태도로 하루를 맞이할 것인지. 이 선택들이 모여 나의 삶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 빅터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