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출근한다.
아이는 할머니 댁에, 나는 병원으로.
차에 타자마자 심심해요~ 하는 아이.
남편이 노래 틀어줄까? 묻는다.
아빠가 노래 틀어주신대, 어떤 노래 듣고 싶어?
보통은 호키포키, 아빠 힘! (아빠 힘내세요), 안녕 안녕 (모두 다 안녕), 태극기, 아기 상어와 같은 노래들을 틀어달라고 한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말하려나? 기다리는데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거? 생각해 둔 노래가 없어 잠시 당황했다.
음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더라, 남편에게 SOS를 청한다.
요즘 어떤 노래가 좋아요? 한 번 틀어주세요!
남편도 어물어물하다 뭔가를 누른다.
달리는 차 안에서 빅뱅, 블랙핑크, 레드벨벳, 박재범, 아이유과 같은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인기 TOP 100이다.
나쁘지 않다, 이런 핫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언제던가?
덕분에 신나는 기분으로 주말 아침 출근을 했다.
아이가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자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한동안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가 흘러나왔고 클래식이나 좋아하던 팝, 가요는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퇴근 후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그날도 집에 오니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낭창한 동요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별이가 좋아하는 노래 많이 들었지?
그럼 이제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좀 들어도 돼?"
아이는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네" 하고 대답했다.
"고마워. 엄마도 가끔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
그렇게 나는 가끔씩 어떤 날은 클래식을, 어떤 날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어떤 날은 재즈를, 어떤 날은 철 지난 가요를 틀었다. 이후로 가끔 클래식이나 팝송, 가요들이 흘러나오면 아이는 소리친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엄마의 취향을 기억해주는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우리 엄마가 치즈 돈가스를 좋아하는지 엄마 나이가 환갑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그렇게 '엄마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 혹은 '짜장면이 싫은 사람'인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숨기다 못해 거짓으로 말할 수밖에 없던 시절.
지금도 부모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집안의 중심이 아이가 되는 것이 당연해진다.
거실, 방 가릴 것 없이 아이의 물건으로 가득 차고 식탁과 옷장, 온 세계가 아이의 것이 된다.
아이 물건은 서슴없이 장바구니에 척척 담아도 내 물건은 골라본지가 오래다.
그렇게 부모의 취향은 어딘가 저너머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부모도 취향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게 된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로 행복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오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났더니 시간이 남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라는 허무한 말을 수십 년 후에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와 놀이를 하다가도 가끔씩
엄마는 이걸 좋아해, 엄마는 이걸 싫어해, 너는 어떤 게 좋아?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잃어버리지 마.
부모도 취향이 있는 존재다.
호불호를 통해 누구나 자신을 더 알아갈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테다, 작은 결심을 해본다.
아, 그리고 다음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도 듣자고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