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TV를 안 보겠다고 울었다.
아이가 TV보다 좋아하는 것은...
우리 아이가 보는 영상은 딱 하나.
바로 능률교육에서 나온 월간 구독 '호비'라는 캐릭터다.
매달 책과 DVD가 오고, DVD에는 20-30분 정도 되는 교육 영상이 들어 있다.
사실 수많은 동영상 중에서 뭐를 보여줘야 할지 몰라서 못 틀어 준 것도 있다. 이건 아이 발달에 따른 교육적인 내용도 있기에 부담 없이 하루 한 편은 틀어주고 있다.
온라인으로 보지 않아서 자동 재생의 위험이 없고, 부모가 꼭 틀어줘야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호비가 먼저 "오늘은 그만~ 내일 다시 보자~ 내일 또 만나자~"라며 헤어지는 엔딩 덕분에 하나만 더 보겠다고 조르는 일도 거의 없다.
아이는 영상이 끝나면 더 보고 싶다고 고개를 파묻고 우는 시늉을 하다가도 금세 털고 일어난다.
우리의 요즘 루틴은 이랬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아이는 바로 호비를 보여 달라고 조른다.
나는 영상을 틀어주고 주방으로 가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영상이 끝날 때쯤에 식사 준비를 마치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하다 보면 남편이 도착한다.
나는 내심 영상의 존재를 매우 감사해하면서 마음 편한 저녁 식사 준비에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아이가 어쩐 일인지 영상을 보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내가 퇴근이 조금 늦어서 아이는 이미 할머니와 저녁 식사도 마친 뒤였다.
평소라면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청 반가워하며 인사하고 바로 소파로 조르르 가서 호비 볼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나를 봐도 본체만체,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내가 먼저 "호비 볼래?" 물어보고 여느 때처럼 영상을 틀어버렸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했다.
마침 남편이 퇴근해 와서 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영상을 보았다.
그런데, 한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아이가 주방 쪽으로 뛰어 오더니 큰 소리로 울며 나를 부른다.
"엄마아아아"
엉엉 우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호비 보기 시러어"
울먹이며 서럽게 통곡하는 아이.
당황스러웠다.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봐도 돼."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TV를 껐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보다가 지루해져서 끄겠다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재미없다고 넘겨 달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울면서 보기 싫다고 한 적은 처음이다. 그렇게 아이는 한참을 내 품 안에서 울었다. 눈이 붓도록...
"그럼, 엄마랑 뭐 하고 놀까?"
그제야 아이는 눈물을 닦고 장난감으로 나를 데려간다.
식사 준비도 마다하고 아이 옆에 앉아 함께 놀아주다가 결국 거실에 급하게 상을 차리고 아이 옆에서 놀면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아이와 이런저런 놀이들을 하고 책도 읽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웃으며 인사하고 자러 갔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무거웠다.
오늘 내가 조금 늦게 와서 좀 서운했던 걸까?
퇴근하고 와서 자기랑 놀아 주지 않고 가버린 게 속상했을까?
보여달라고도 안 한 영상을 틀어 놓고 주방으로 가버린 것이 미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할머니가 아이에게 어제 일을 얘기하며 슬쩍 물어보니
엄마가 보고 싶었어
라고 대답을 했댄다.
아이쿠야...
마음이 철렁.
퇴근 후 자기 전까지 두세 시간 남짓.
그동안 밥도 먹고 목욕도 해야 하는데 영상까지 보면 사실 우리가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은 정말 24시간 중 한 시간이 될까 말까 한다. 그 잠시가 아이와 우리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조금 더 밀도 있고 알차게, 마음을 다해 아이를 안아주고 함께 해야겠다.
아이들이 아무리 TV를 좋아하고, 영상에 푹 빠져도 결국 부모님의 사랑이 최고임이 틀림없다.
오늘은 퇴근하고 가면, 호비를 보여 달라고 하려나? 안 하려나?
궁금해진다.
그래도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줘야 할 텐데...
밥 안 먹고 계속 놀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굳게 결심했다가도 막상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이렇게 또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는 워킹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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