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밤에 피아노를 칩니다.

내 인생의 값비싼 사치

by 닥터스윗비

퇴직금을 털어 피아노를 샀다.

손가락 관절을 아껴야 하는 류마티스 환자에게 피아노란 금기되는 행위일 게 뻔한데도 말이다.


나름 고심해서 피아노를 골랐다.

낮에는 시간이 안 될 거라 밤에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디지털 피아노를 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 피아노와 최대한 비슷한 것을 사고 싶었다.

자연에 가까운 소리일수록 따뜻하니까.

건반이 나무로 되어 있고 해머로 내려치는 방식을 찾다 보니 가격들이 꽤 비쌌다.

그렇게 10년 만에 낙원 상가를 찾았고 발품을 팔아 직접 골라온 나의 피아노.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다.

매일 30분씩 아이가 잠이 들고 나면 이어폰을 끼고 더듬더듬 건반을 눌렀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러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며칠 만에 관절들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대곡을 친 것도 아니고, 거창한 연주를 한 것도 아니고 뚱땅거리는 수준이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피아노를 팔아버리거나 처분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주 치지 말자.


스스로와 타협을 해본다.

한 달에 한두 번, 짧은 곡 한 두 개만 쳐볼까.
아니면 아이랑 간단한 동요만 쳐도 좋아.
열심히 치지 않아도, 실력이 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내 인생의 값비싼 사치를 시작했다.

몇 백만 원 주고 산 피아노는 한 달에 한두 번 잠깐씩 뚜껑이 열릴 뿐이다.

하지만 피아노는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물 뿌리개가 되었다.


매일 아침 바쁘게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육아와 코로나의 조합은 삶을 영화관 한 번 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림 한 장 여유롭게 느낄 틈도 앗아갔다.

아름다움이 매몰된 삶이란 얼마나 사막 같은지.


우리 선조들은 힘든 노동을 하는 와중에 다채로운 노동가들로 힘을 냈다.

땡볕에 앉아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땀 흘리며 밭일을 하는 와중에도 노래를 불렀다는 말이다.

일할 기운도 없을 것 같은데 무슨 노래일까 의아하지만, 노래가 있었기에 그 고됨을 이길 수 있던 게 분명하다.

예술이란 삶이란 토양을 적시는 단비 같은 것이다.


정신없던 주말 하루.

아이가 잠이 들었다.

조용히 피아노의 전원을 켜고 이어폰을 낀다.

건반을 누른다.

나무가 울리며 내는 따뜻한 소리에, 오랫동안 전해져 온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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