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청춘에게 주고팠던 동화
#청춘 #편지 #동화
이준익 감독의 팬이자 그의 작품 <동주>를 통해 박정민을 애정 하는 배우 반열에 올린 사람으로서 -애초에 객관적인 평가는 글러부렸다, 하고 앉았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동주>, <박열>과 함께 청춘 3부작이라니. 이 타이틀은 근래의 어떠한 히어로 시리즈물보다도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가 영화 속에 담은 현시대의 청춘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까
정말 궁금했다. 청춘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혹은 사람들과,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와 대화하듯 영화를 감상했다.
왜 이토록 젊은 이들이 랩에 매달리나 이해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너무 잘 알 것 같아 그런 것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수(박정민 역)를 보며
관객 중 누군가는 이것에 대한 질문을 새로이 던질 것이고
관객 중 누군가는 이것에 대한 익숙한 답을 혼자 되뇌일 것이다: 왜 그 작은 단칸방의 가난 속 자신의 과거를 홀로 메아리 삼아 외치는지
자신의 한을, 분노를, 후회를 적어 내려 가는지.
영화를 보기 전 그가 래퍼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 들었을 때, 단순히 요즘 젊은 세대가 가장 열광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선택한 소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수와 그의 작은 단칸방에는 힙합이라는 현상에 대한 그의 질문과 답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인이 될 줄 알았더니 래퍼가 되었네
이 애정 어린 대사 속에서 그들의 단칸방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온도는 이전 작품들의 그것들과 사뭇 흡사했다.
그의 눈에 비친 래퍼들은 이 시대의 시인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애틋한 존재들이었다. 이야기라는 그만의 위로 방식을 통해 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20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촌놈으로서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근데 그게 이렇게까지 촌스러울 일인가 싶다.
꼭 이렇게까지 촌스러워야 했나 싶다.
영화 속 고향이라는 소재와 함께 놓인 수위 높은 성역할과 사투리 섞인 개그코드는 분명 나와 같은 이들에겐 당황스러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에 그의 팬으로 이미 객관성을 잃은 채 앉아있는 당신에게 몇 번이고 외치게 할 것이다.
아니야,! 이,이 사람은 이준익이잖아 !
그래도 이 촌스럽고 고집 센 감독은 기어이 그 촌스러움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촌스러운 이라는 형용사를, 그 앞에 붙어있던 -멋있는, 혹은 세련된 -이라는 모순적인 수식어 곁에 기어이 가져다 놓는다. '촌스럽고 멋있는'이라는 말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건 마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하는 듯,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을 끌어가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도 좀 보라고, 너도 할 수 있다고 하려는 듯,
행여 그것이 코드의 오류로 인한 첫사랑과도 같은 결과를 낳게 될지라도, 그는 여전히 서툴지만 순수한 그 마음을 지켜가려 하려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촌스러움 앞에 공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親舊(친할 친, 오래된 구) -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 되는 법을 아는 듯하다.
그런 것이라면, 촌스럽지만 멋있는, 멋있지만 촌스러운 어른이 그런 것이라면, '기어이' 나도 그런 어른이고 싶다.
영화는 참 동화를 닮았다. 꿈과 사랑 이야기, 그것을 담았다.
우리가 보고 자란 꿈과 사랑의 동화는 권선징악,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 이야기로 크게 정리된다.
우리가 보고 자란 꿈과 사랑의 청춘 서적은 노력해라 성공한다와 그런 노력 하지마라 그런 성공 의미 없다로 크게 정리된다.
동화라고 느껴졌다는 건,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해주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뜻한다.
'말해주고자' 라는 단어 - 그래, 그렇다면 그것은 꼰대스러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동화를 써내려가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 다음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은 다양한 해석을 위해 "이 영화와 이야기 나누는 법 (feat. 박정민은 천재다) "부터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너에 대한 예의
-
너의 잊혀진, 너의 도둑맞았던,
도둑 맞고도 화내는 법도, 찾는 법도 잊어버린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함께 찾아가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함께 찾아가는 그것 _당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것이
아름다운 노을과도 같은 당신의 모습인 사람
당신조차 잃어버린 그 모습을 기억하고 지켜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사랑해라
-
과거를 마주해야 한다.
쪽팔린 일들, 화나는 일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일들
상처 준 자로부터 사과받고 싶은 일들
이 모든 것들을 마주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꿈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그런 사람과 사랑하고, 그런 꿈으로 나아가는 것이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노을이고
그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 너 자신에 대한 예의이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에 내포되어 있는 '꼰대'란,
자신이 당한 악습에 순응한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것에 희생당한 자들을 나약한 자들이라 폄하하고
자신을 강한 자, 살아남은 자라 정의 내림으로써
현존하는 악습을 고착시키는 데 기여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당신조차 잊어버린 노을의 모습을 찾아주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 없다.
마음을 전하고픈 상대가 좋아하는 분야에 기웃거리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다가가는 첫사랑과도 같은 모습이라면,
그런 사람은 절대 꼰대가 될 수 없다.
그의 촌스러움이 밉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의 촌스러움이 '멋있는'이라는 그의 수식어 곁에 놓일 수 있는 이유다.
나는 정말 박정민이 감독이 되겠다 선언해도, 전업 작가가 되겠다 선언해도, 마케팅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영화 <변산> 의 홍보는 '홍보'라 쓰고 '박정민'이라 읽는다. 여느 다른 영화였다면 앞의 문장은 '메인 배우가 영화가 내세울 유일한 자랑 거리' 라고 자연스레 해석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정말 박정민이 영화 홍보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아주 똑똑하게 한다.
좋아하는 분이 했던 표현 중 "열정이 넘치는데 똑똑하기까지 한 사람" 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똑똑하다의 표현은 아마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는 사람', 그래서 결국 "멋있는 사람" 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민은 멋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가 쭉 그 멋있음을 지켜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음악을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만들어주는 뮤직비디오를 두고 우리는 좋은 뮤직비디오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주는 자체 제작 뮤직비디오를 여태까지 본적이 없다. 그것도 그 영화의 메인 배우가 기획, 연출, 제작, 편집한 뮤직비디오는 더더욱 본 적이 없다. 아 맞다.. 랩도 자기가 쓰고 자기가 부른다. 무슨 이러한 뮤직비디오를 두고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박정민 당신은 진정,,)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뮤직비디오를 본 사람으로서 나도 이 영상을 보고 영화를 봤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을 정도로 영상은 이 영화를 대하는 방법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감독의 팬이고 그것에 의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존재한다면, 자연스레 감독과 대화하듯 영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쪽팔림과 공존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나조차 힘든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ㅋㅋㅋ)
그렇다면 감독의 팬도, 박정민과 김고은의 팬도 아닌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이 홍보 뮤비는 그것의 가이드라인을 너무나도 잘 담고 있다.
그 중 간추리면 다음의 것들일 것이다.
1. " 야 그랬으면 주인공으로 나 쓰겠니? 더콰나 도끼 아님 맫씨나 던밀스겠지"
2. " 근데 잠깐 함정 이 양반 힙합 모른대 "
" 아부지 이거 힙합 영화 아니라고 "
(뮤비에 정말 박정민의 아버지가 나온다)
3. "내 인생이 흑역사 뿐이라 괜찮어 "
"자, 이런 거 본 적 없을걸?"
촌스러움과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면,
Ready, Action You already know.
마주하기, 그리고 나아가기.
다큐져니 옆동네산책 #05
영화 <변산> (2017, 이준익)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2018. 06. 26
장염에 걸려 밥을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던 날
영화를 보며 밤과 과자를 맛있게 먹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