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미 행복하구나

by 김까치

조금만 힘줘 잡아도 부서질 것 같던 아들이 그간 제법 영글었다. 연약했던 목과 허리에도 힘이 생겨, 두리번거리며 세상 구경하기를 즐긴다. 몸처럼 마음도 쑥쑥 자랐는지, 입 꼬리만 슬쩍 올려 배시시 웃던 아들이, 이제는 소리 내어 깔깔깔 웃는다. 아들을 앉혀두고 그 앞에서 갖은 재롱을 부려 그 청량한 웃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온갖 꽃들이 일순간 펑펑 터져 피어오르는 기분이 든다. 지금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큰 기쁨이다.


아들은 종종 까르르 신나게 웃다가도, 갑자기 급변해 목이 터져라 운다. 반대로, 집을 다 무너뜨릴 기세로 울다가도 “꽁꽁!” “꾸룩!” 같은, 된소리 의성어를 힘껏 외쳐주면 눈물을 달고 깔깔깔 웃기도 한다. 태어난 지 갓 5개월 된 아들에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지, 한 가지 감정이 다른 감정과 섞이거나 다른 감정을 덮어버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순수하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아내와 나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서로에게 자주 던졌다. 온갖 듣기 좋은, 다양한 답들이 오갔지만, 큰 틀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해주고 싶다는 게 우리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상투적인 말이겠으나, 나는 아들이 행복한 아이로, 행복한 청년으로,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나 살게 돕고 싶다.


사실 이 ‘행복’이란 단어처럼 뜬구름 잡는 말이 없다. 철 지난 강연들에서 늘 강조되던 것이라 그 무게가 가벼워지기도 했고, 사람마다 이 말의 정의가 제각각인 덕에, 어지간한 대화를 미궁 속으로 몰고 가는 마성의 단어가 되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좋은 순간에, 있는 그대로, 충분히 만끽하며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찾아본 사전적 정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그런 면에서 지금의 아들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다. 한 없이 좋은 것을 한 없이 좋아하는 존재. 싫거나 슬픈 것은 또 가감 없이 싫어하고 슬퍼하는 존재가 오늘의 아들이었다. 아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무언가를 계속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순수함을 빼앗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아닐까.


내 아들의 아버지인 나도, 내 부모님의 어린 아들이었다. 내 부모님은 나를 바르게 키워내셨지만, 어렸던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마음을 끓이던 날들이 여럿 있었다. 두 분의 다툼이라던지,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 친척들과의 문제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마다 나는 어른의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고, 버거웠지만, 그렇게 되었다.


나의 아들이 스스로의 세계와 스스로의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오늘 낮에 본, 티 하나 없는 얼굴을 바탕에 잘 깔아 두고, 차근차근 그 위로 단단한 마음들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최선을 다해 웃는 아들, 최선을 다해 우는 아들

얼마 전 태어난 아들과, 아내에 대해 이어 씁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