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올림픽을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특히 펜싱은 꼬박꼬박 챙겨 본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손에 땀이 날 만큼 짜릿하기도 하고, 기분 좋은 기억이 하나 떠오르기 때문이다. 펜싱 경기가 열리는 곳이 '마쿠하리 멧세'인데, 나는 2년 전 그곳에 음악 페스티벌을 보러 갔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공연장으로 갔다. 그렇게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열심히 공연을 보던 중 마쿠하리 멧세 한구석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일단 울타리로 막힌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모여 몸을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맨 앞에서는 디제이 두 명이 열심히 손을 움직였지만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이 분홍색 불빛이 반짝이는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사일런트 디스코'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무척 즐거워 보여서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클럽 한 번 가본 적 없는지라 자신이 없어져서 그만뒀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심야 공연을 기다리러 들어왔다가 사일런트 디스코에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밤이라 주위에 구경꾼도 없어서 이 때다 하고 용기를 내서 가까이 갔다. 부끄럽지만 나한테는 그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진행 요원이 헤드폰에 문제가 없는지 정성스레 확인한 후 나에게 내밀었다. 그걸 쓰니 이제 내 귀에도 현란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들어오는 걸 눈치도 못 챈 것 같았다. 구석에서 조금씩 몸을 흔들어 봤다. 의외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디제이가 있는 앞쪽에 선 사람일수록 몸을 더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나도 둠칫거리며 조금 더 전진했다. 그러던 중 헤드폰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렸다. 우리는 가장 귀에 익은 후렴 부분만 크게 따라 불렀다. 문득 내가 밤 열두 시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침묵의 디스코를 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이상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디제이는 이 구석진 곳이 마치 메인 스테이지라도 되는 듯 감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뷰티풀, 뷰티풀 피플!" 그 말이 지금껏 학교나 회사에서 들었던 그 어떤 칭찬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펜싱 경기를 보고 있으면 자꾸 그때가 생각난다. 가족들에게 나 저기 간 적 있다고 아는 척도 해본다. 물론 침묵의 디스코 얘기는 쏙 빼고. 다시 화면을 보면 선수들이 저 기다란 쇠꼬챙이에 인생이 달린 듯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그 디제이의 말이 생각난다. 뷰티풀, 뷰티풀 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