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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레 Apr 24. 2021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지음

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심하게 걱정하는 편이라서, 종종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이런 일로 고민한 것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질까?" 하고. 그러므로 나는 삶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이런데, 매일 말기 암 환자를 상대하는 종양외과 의사라면 오죽할까? 어쩌면 그런 사람이 죽음과 삶을 주제로 책을 쓰는 건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사실 처음에는 좀 더 감동적이고 '힐링'되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만, 역시 현실은 사랑과 감동으로만 넘치진 않는다. '너무 열심히 산 자의 분노', '내 돈 2억 갚아라', '혈연이라는 굴레'. 소제목만 봐도 상상할 수 있듯이 암울한 상황이 펼쳐진다. 반면 죽음을 앞두고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노인, 암을 이겨내고 완전히 (긍정적으로) 달라진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택시 기사처럼 좀 더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암을 대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지만, 신기하게도 이들은 모두 죽음의 실체를 또렷하게 마주해 본 자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게 무엇일까 한 단어로 정리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자, 삶의 소중함, 그런 진부한 단어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건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인 모른다. 나 역시 죽음을 코 앞에 두어야만 비로소 그 비슷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가 관찰해 온, 죽음을 마주한 여러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것이 어떤 마음일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확실한 사실은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삶은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잘 들어보라. 삶은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비록 인간의 생이란 유한하기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지만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남은 날들을 조금 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종종 이 질문이 암이라는 병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리는 건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그 끔찍한 시간은 찾아올 텐데 지금은 다 잊고 그냥 살면 어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삶의 모든 괴로움은 죽음을 생각하면 조금 견디기 쉬워진다고 느낀다. 언젠가 나는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 이런 고통을 느끼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진다. 반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의미가 없어지기는커녕 더 소중해진다. 예를 들자면, 잘 안 풀릴까 봐 걱정하던 회사 일은 '망하면 뭐 어때'라는 마음이 들고, 따뜻한 봄 햇살은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달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고 말한 스티브 잡스의 뜻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공감한다'라고 하기엔 아직 죽음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을 다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바꿔 말하면 삶을 잘 견디고 싶어서 죽음을 생각한다.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꾸역꾸역 되새기며 오늘을 산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인 셈이다.


며칠 전에 갑자기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그건 바로 "oh, wow. oh, wow. oh, wow."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말인데, 나한테는 마치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람의 감탄사처럼 들린다. 전해만 들었던 경이로움을 실제로 확인하는 순간 입에서 절로 나오는 탄성 같기도 하다.  죽음이  앞에 다가왔을  나는 과연 무엇을 볼까? 어차피 찾아올  순간이  무섭고도 궁금하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버킷 리스트 중에는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하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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