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옷장을 정리하며 생각한 것

by 도담도담


오늘 옷 정리를 했다. 몇 달간 신세를 진 가을 겨울 봄옷을 옷장에서 빼고, 보관 상자에 넣어둔 여름옷을 옷장에 거는 작업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사니 계절이 바뀔 때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옷장이 크거나 따로 옷방이 있어서 항상 걸어놓는다면 안 해도 되겠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않으니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이렇게 옷 정리를 할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첫 번째는 ‘옷은 많은데 왜 막상 입으려고 하면 옷이 없을까?’, 두 번째는 ‘나는 작년에 벗고 다녔나?’, 세 번째로는 ‘이 옷은 진짜 한 번도 안 입었네. 버려!’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나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어’이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하던 생각인데, 네 번째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던 몇 년 전부터 든 생각이다.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즘, 단샤리, 킨포크, 휘게, 라곰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도 표현되고 이와 관련한 책도 몇 년 사이 다수 출간되었다. 나는 유행을 타지 않는 깔끔하고 단순한 옷이나 소품을 적당히 갖추고 입고 쓰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해했다. 나아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최소한의 것을 갖추고 인간관계 역시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게 사는 방식이라고.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가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일단 이렇게 받아들였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을 번역한 적도 있고, 정리하는 책을 번역하면서 반비례하게 갈수록 지저분해지는 내 책상을 보면서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먹고 책상 정리를 할 때나 이번처럼 옷 정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리할 게 많아서 귀찮으니까!


오늘은 정리하는 김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좀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우선 다 버리고 딱 필요한 옷을 새로 살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살 돈이 없으니까 당연히 이 안은 1초 만에 기각이다. 이어서 쓸 만하고 좋아하는 옷만 남기고 버릴 생각을 해봤는데, 다 멀쩡하게 입을 수 있는데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다. 좋아하고 말고를 따지기에는, 이렇다 할 패션 취향이 없어서 이 옷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보니 선별하질 못하겠다. 이런 고민을 거친 끝에 결국 옷장에 있던 옷은 거의 그대로 보관 상자에 들어갔다. 그래도 이 나이에 입기에는 양심이 따끔따끔한 귀여운 옷이나 소매가 조금 해진 옷은 추려 옷장을 비웠는데, 그래 봤자 다섯 벌 정도여서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뜨개질로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가을 겨울옷은 부피가 큰데 두툼한 옷이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으니 큰일이다.


약 1시간쯤 옷을 정리하고 지쳐서 누운 채 생각했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미니멀과는 거리가 먼 성향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일단 책을 쟁이는 습관이 있으니 자연히 물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책이란 무게도 상당하고 부피도 커서 넓은 공간을 요구하는 물건이니 놓아두면 짐처럼 보인다. 거기에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실을 쟁이는 습관까지 붙었다. 스웨터 한 벌을 뜨려면 최소 600그램 이상은 실이 있어야 하니 이 역시 부피가 상당하다. 거기에 팬 생활도 하니 CD와 DVD와 콘서트 상품이 자연히 따라오고 스누피 짱 팬이어서 자잘한 피겨도 사방에 굴러다닌다. 침대에도 잠 친구인 인형 두 개와 쿠션 두 개 굴러다니고, 강의 듣는다고 사서 게임용으로 쓰는 태블릿까지 널브러져 있다. 이미 이런 물건들에서부터 미니멀이 안 되는데 옷이라고 될 리가 있나. 이왕 못할 거 포기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정리할 시기만 오면 번거로워 귀찮아서 미니멀을 꿈꾸다니, 나란 사람은 참 멍청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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