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모, 그중에서도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좋은 건 크게 보라는 뜻인지 몹시 얼큰이인데 눈코입은 몰려서 여백의 미가 너무 대단하고, 눈은 단춧구멍과 친구다. 코와 입은 비대칭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이고, 어쩜 이리 못생겼니?' 싶고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 '이야, 어쩜 조화를 이뤄도 이딴 식으로 이뤘니?' 싶다.
지성 피부여서 그런지 뾰루지도 얼마나 잘 나는지! 또 모공은 왜 이렇게 넓은지!
나는 외모지상주의다. 예쁜 것,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고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다행히도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 자주 녹아내리지는 않지만, 예쁘고 귀여운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내 얼굴이 취향이 아니니 어려서는 세상의 비애란 비애는 다 짊어지고 살았다.
물론 다 과거 일이다. 지금은 외모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땅을 파진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미 갖고 태어난 외모가 부처나 예수나 알라에게 기도한다고 눈에 띄게 달라질 리 없다.
성형외과에 가서 돈다발을 뿌리며 "1억! 현금이다!"를 외치지도 못한다. 1억도 없거니와 견적이 그쯤 나오면 수술하다가 죽지 않을까.
애초에 아픈 게 싫고 주삿바늘이 무서워서 쌍까풀 이상의 수술은 엄두도 안 난다.
이런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생긴 대로 살자고 마음을 바꾼 후로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봐도 딱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고, 못났다~.'이지만 '응, 그래서 뭐?' 하고 피식 웃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지금도 콤플렉스가 있으니, 바로 앞머리이다!
나는 눈썹과 눈 사이 정도 길이로 앞머리를 내렸다.
몇 번 길러봤는데, 포니테일로 묶을 때 앞머리가 없으면 올백이 되니까 싫었다. 핀이나 머리띠를 할 때도 앞머리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모자를 좋아하는데 앞머리 없이 모자를 쓰면 영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길렀다가 잘랐다가 길렀다가 잘랐다가를 무한 반복하다가 지금은 앞머리가 있는데, 이 앞머리란 녀석이 문제다.
드라이 기술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헤어롤로 똘똘 말고 1시간 가까이 있어도 밖에 나가 바람 한 번 맞으면 그대로 흐물흐물 늘어진다. 덥고 습하기까지 하면 아주 가관이다. 이마에 미역을 달고 다니는 줄?
남들은 앞머리를 동그랗게 잘 말고 다니는데 내 앞머리는 왜 중력의 법칙을 따를까? 게다가 일관적으로 충실하지도 않다. 중간까지는 충실한데 끝으로 갈수록 법칙을 거부한다. 깨부순다.
앞머리 끝이 아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삐친다. 붓글씨 삐침처럼 커브를 그려가며 끄트머리가 하늘로 치솟는다.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바람이 불면 손으로 눌러보고 삐친 부분을 만져도 보지만 결국 30분도 지나지 않아 내 머리는 모든 손길을 거부하고 파업한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와중에 땀도 많은 체질이다!) 바람에는 귀싸대기를 맞으며 시달리다가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면 이마에 까만 시옷이 있다.
최대한 바닥과 멀어지겠다는 듯이 양옆으로 솟구친 시옷의 앞머리를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최소 30분, 최대 1시간을 들여 앞머리를 말아놨는데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이 모양이니 속이 탄다.
그렇다고 약속이나 업무 미팅이 있는데 앞머리가 시옷이라서 못 간다고 할 순 없는 노릇.
시옷을 어떻게든 달래보지만 내 시도는 열이면 열 실패로 끝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뚝 끊기면서 포기하게 된다.
"그래, 나는 시옷 인간이다!"
당당하게 화장실을 나서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는 것 같으면 괜히 주눅이 들어서 꾸물꾸물해진다. 사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뭐가 지나가네 싶어서 쳐다보는 것이지만, 이 한결같은 자의식 과잉이란.
평생 나를 괴롭힌 외모 콤플렉스는 이제 한 80퍼센트쯤 훌훌 벗어던졌는데, 앞머리 콤플렉스는 여전히 벗질 못했다.
그냥 기를까. 하지만 기르면 모자를 못 쓴다. 무엇보다 거지존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이렇게 오늘도 앞머리에 괴로워하며, 일하기 위해 똑딱핀을 꽂는다.
그래도 기역의 앞머리, 니은의 앞머리, 디귿의 앞머리 기타 등등의 앞머리보다는 시옷의 앞머리가 나은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