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잠긴 세계의 가장자리
하늘은 늘 젖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공기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습기가 산을 타고 기어올라와, 나무와 바위, 내 피부 위에 얇게 들러붙었다. 이곳에서는 마른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아침이면 몸이 먼저 깨어났다.
눈을 뜨기도 전에 손과 발이 부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접으면 살이 서로 밀리는 느낌이 났고, 주먹을 쥐는 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씻어도 소용이 없었다. 습기는 빠져나가지 않았고, 피부는 늘 물에 잠긴 것처럼 주글거렸다.
나는 산 꼭대기, 가장 오래된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살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점점 위험해졌고, 결국 의미를 잃었다. 바다가 불어난 뒤로 세상은 평면이 아니라 깊이가 되었다. 낮은 곳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된 벽에 칼끝을 대고 선을 하나 그었다.
하루가 지났다는 표시였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표시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닳아갔다. 살아남는다는 건 버티는 일이 아니라, 계속 줄어드는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었다.
도끼를 챙기고 집 가장자리로 다가가 밧줄을 붙잡았다.
밧줄은 끽끽 소리를 내며 내 몸을 받아줬다. 내려갈 때마다 같은 소리, 같은 간격. 그 소리 덕분에 나는 아직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었다.
땅을 밟자, 흙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바다와 맞닿은 곳은 이미 질척한 땅으로 변해 있었다. 발을 떼어낼 때마다 흙이 늘어졌고, 산 입구는 아직 물에 잠긴 채였다.
이따금 사람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수면 위로 스쳤다.
불빛을 비추는 순간,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는 건 금방 가라앉는 작은 물결뿐이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것처럼.
오늘도 나는 내가 세운 말뚝이 보이기 전까지만 내려왔다.
그 너머로 가는 건 식량 때문이라도 피했다. 바다와 가까운 땅은 방향을 속였고, 한 번 잘못 디디면 돌아오는 길을 잃기 쉬웠다. 말뚝은 약속이었다. 여기까지, 그리고 다시 위로.
습기는 여전했다.
아침부터 손이 무거웠고, 장갑 안쪽이 금세 눅눅해졌다. 도끼를 쥘 때마다 손바닥이 미끄러졌다. 예전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감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불편이 오래 남았다.
식량은 많지 않았다.
물에 잠기지 않은 나무 아래를 뒤져 통조림 몇 개와 아직 상하지 않은 곡물을 챙겼다. 내려오는 동안 몇 번이나 숨을 고쳐 쉬었다. 공기가 눅눅해 깊이 들이마셔지지 않았다.
말뚝이 보일 즈음, 나는 습관처럼 고개를 들었다.
저 멀찍이, 50층 높이의 건물이 보였다.
도시 끝자락에 서 있는, 오래된 오피스 빌딩. 유리 외벽에 하늘이 비쳤고, 창문들은 반짝였다. 그곳은 오늘도 평범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꼭대기 어딘가에서 빛이 한 번 깜빡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햇빛이 반사된 건지, 누군가 불을 켠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시 보려는 순간, 빛은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강아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뭐야, 그냥 반사겠지.”
내가 말했지만, 내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저 건물은 늘 거기 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은 근거가 없어서 더 불편했다.
나는 강아지 목줄을 고쳐 잡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괜히 욕심을 내면 하루가 길어지고, 길어지면 피곤해지고, 피곤해지면 실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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