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지 않은 구간을 건너
I. 공통점에 착안한 컨셉으로 기록을 빈번히 해 가자고!
만학도로서 두 번째 대학을 다니고 있다. 크리에이터에 적합할 한국영상대. 지난주 학과장 교수님과의 사담? 중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듣게 되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해 가야지." 앞뒤 맥락상 해당 문장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뿌옇던 시야가 걷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나는, '역시 교수님' 엄지척을 외친 후 며칠이 지나 1-2학기 휴학을 결정하는데..
막상 과제와 조별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분기에 서서 홀로 붕 뜬 시간을 맞이해 가니, 여태 뒤로 놓은 여러 채널들이 빤히 응시하는 듯. 방향과 컨셉을 굳히지 못해 보류 상태로 계속 끌어온 빈자리들이 아우라 없이 그저 차지중이다. 그간 끄적인 이별경험, 운전연수, 사기썰 등은 사실 긴 호흡으로 지속적 공감을 얻기에는 현재 내 능력으론 모자라기 때문에. 결국 본질로 돌아가 본 채널 콘텐츠를 소비할 독자층의 절대적 공통점, <글쓰기>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착안하여. 현재 내 입지에서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는 단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하는 것>을 모티브 한 후 보다 빈번히 드나들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춰 운영 중인 채널들에 숨 불어넣을 것을 결의하고 또 선언하는 중.
II. 선행 조건을 찾아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인 이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해야 한다 조언하신 교수님은 또 다른 말씀도 내게 해 주셨었다. 바로 "넌 다른 사람이 평생에 한 번도 못 해볼 이야기들을 여러 개 갖고 있으니, 그걸 엮어 스토리를 만들어봐라"라고. 여러 채널들을 갖고 있어 스피커 할 기회는 많았기 때문에, 한편 두 편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긴 했으나 사실 아직 '깊은 곳에선 흐르고 있는 샘' 같아 어떤 플로우로 엮을지에 대한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그저 고이도록 두고만 볼게 아니라.. 조그만 창이라도 하나 내어 빛이 언제든 스밀 수 있도록 손 봐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운을 이제야 떼 보는데.
당장 먹고살 만큼의 돈이 되지 않지만 오랫동안 가슴속에 늘 있어온 글쓰기라서, 내 경우엔 지속해서 글을 써가기 위해 선행적으로 일상의 지탱이 유지되어야 하는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생계를 위한 본업의 지속, 건강과 주변인들의 안전, 운영 중인 두 단체의 원활한 행보. (여기에 시시각각으로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범국가적 이슈도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는 시간대가 고정적일 수 없다는 게 아쉬운 부분인 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고 있다는 건, 오랜 기간에도 변치 않는 동기가 단단해서인데, 이유인 즉.. 결국 나는 글로써 치유받고 성장한다는 것. 글은 내가 제일 안정적으로 찾게 되며 함께 해 온 수단이자 매개체로, 나 또한 다른 이들의 생 언저리에 무언가를 기여하며 나누기를 희망한다는 것.
III. 위치 선정은 태도 관철에 상당히 유용해
위 단락까지 작성한 후 업무차 진행한 유선상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너는 글로 말하지 마. 대충 길게 늘여 놓기만 하면 다야? 뭘 전하고 싶은 건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듣는 사람 답답하게 (중얼중얼)" 이후 추가되었던 내용들에선 무슨 말을 전하려고 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문장이 이어졌기에 대충 해당 내용이 기분 나빠(응? -내 생각이다.) 토로한 원망 섞인 발언이라(응? -이것도 내 생각이다.) 해석하지만, (..) 감정적인 부분을 가감 없이 수년 여간 나눠온 지인이자 관계자에게 비난 모양의 비판을 들을 때에는 겸허보다 속상이 먼저 고개를 내미는 게 본성이랄까.. 아무튼, 잘 사는 게 잘 쓰는 거라는 (2020, 생활글쓰기 수업에서 이찬옥 작가님 왈) 말씀처럼, 잘 사는 것 같지 않을 때에도 그 제재를 보따리 삼아 계속 다듬고 매만져 가는 속에서 결국 잘 써갈 수 있게 될 테니(?!) 글에 대한 내 태도만큼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휘청이지 않도록 깨끗하고 단정하게 고수해 갈 것.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그러한 만큼 결과로써는 빛나고 반짝일 테니 말이다.
앞서 눈을 마주하고 코멘트해 주신 학과장 교수님과 함께 있으면 나는 여태 지녀온 4차원적 세계가 받아들여지고 전혀 이상하지 않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 촬영 & 연출하는 일을 전문가로서도 오래 이어오신 분에게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경험은 그야말로 얼마나 안도되는지..!
글에 대해 갖게 되는 내 태도가 설령 휘청이고 금이 가는 사건이 있을지라도, 그를 품고 남을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다만) '비빌 언덕' 같은 존재가 하나 있으면, 살짝 흔들려도 꺾이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아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어느 무리에 나를 위치시킬지 깊이 사색하고 결단을 내리는 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IV. 닫힌 글 속엔 ㅇㅇ가 산다
그렇게 탄생할 내 글들이 내 기준엔 재밌을지 몰라도(=나에게서 나왔으니까), 남의 기준에 하나도 재미가 없다면(=좋아요가 하나도 안 달린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옳을까? 정답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각자만의 정답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더 옳지 않을까? 나만을 위한 것도, 남만을 위한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피드에서는 살짝 내리고 나만의 연습장/창고/서랍에 귀히 간직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살그머니 열어 '그 안에서 아직 발굴하기 전인 투명 상태의 가치'를 보물찾기 하는 일도 사실 글쓰기 과정에서 참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이니까. 감가상각이 글이 갖는 가치에는 시간에 비례하여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10년 전의 관심사도 20년 전의 낙서마저도 언제든 다시 재료화 가능한 기회의 연속인 것. 다만 어느 시기에 어떻게 탄생했던 소스인지에 대해선 분류화 정리를 꺼내기 좋게 해 놓아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므로(...) 노션이나 Dropbox 등의 플랫폼 통해 폴더명, 파일명 등 확실하고 필수적으로 구분 작업 하기를 거듭 권고한다.
I. 공통점으로부터 착안된 콘셉트를 빈번히 기록한다
II. 글쓰기여야 하는 '나만의' 이유를 한 가지 깊이 찾는다
III. 태도 유지엔 일정 정도 이상의 기준 무리에 합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IV. 남들에게 재미없어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보면 숙성 돼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