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와 흐름

by 와루


20211024씀


kt는 꽤 오랜 시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안하긴 했어도 선두를 뺏기지는 않았다. 매직넘버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임차는 언제나 있었다. 삼성은 2-3위에서만 자리를 옮겨 다닐 뿐 선두로 치고 올라가진 못했다. 기회가 없던 건 아닌데 자꾸 한 걸음이 모자랐다.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것이 야속했다.


운명의 시간은 1년을 돌고 돌아 한 시즌의 끝자락에 다가왔다. 거듭된 연패로 1, 2위 간의 승차가 1게임까지 좁혀진 상황에서 kt의 다음 매치업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치러야 할 삼성과의 2연전이었다. kt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삼성에게는 두 번 다신 없을 절호의 기회였다.


kt가 2연전을 쓸어 담는다면 승차를 3게임까지 벌리며 1위 지키기에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삼성이 2연전을 쓸어 담는다면 단숨에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게 된다. 과연 어느 팀이 웃음을 짓게 되었을까.


기세와 흐름에서 갈린 싸움이었다. 10월 22-23일 kt와 삼성과의 2연전이자 두 팀 간의 최종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기세에서 압도했고, kt 위즈는 흐름에서 밀렸다.


이번 2연전은 매치업 전의 분위기에서부터 이미 승부가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타선의 문제였다. kt와 삼성 둘 다 타선의 침체가 있었지만 삼성은 이길 만큼의 점수는 뽑아왔고 kt는 그만큼의 점수마저 뽑아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10월 들어 삼성은 kt를 만나기 전까지 9승을 챙긴 것에 반해 kt는 삼성을 만나기 전까지 5승에 머물러야 했다. 이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상대를 쫓아갔던 삼성. 상대에게 쫓기는 부담감에 벗어나지 못하며 연패의 늪에 빠진 kt. 둘의 분위기가 극명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승리의 분위기에 적응한 삼성은 매치업에 자신이 있었다. 고영표, 쿠에바스라는 쟁쟁한 선발진이 등판하지만 상관없었다. 삼성의 선발은 더 쟁쟁한 원태인, 백정현이었으니까. 게다가 경기장은 삼성의 홈구장인 라팍. 6년만의 가을잔치에 초대받은 삼성 팬들이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삼성이 기세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패배의 흐름에 휩쓸린 kt는 그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거기에 더해 1위 수성이라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안 하던 수비 실책이 연달아 나왔다. 급한 마음에 방망이는 더 안 맞았다. 상대가 견제사, 도루사를 하며 틈을 보여줬음에도 그 틈을 파고들지 못했다. 2차전 심우준의 호수비에 분위기가 끓어오를 법도 한데 너무 쉽게 식어버렸다. 2연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본인들의 1위 자리가 바뀌는 것이 아닌데 이미 빼앗긴 것처럼 안절부절이었다. 그 초조한 마음은 웃음기 하나 없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kt가 불안해할 동안 삼성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1차전에서 타선은 화끈한 폭발은 아니었지만 단 한 번의 찬스를 살리면서 이길 수 있는 만큼의 점수를 벌어다 주었고 투수진은 그걸 깔끔하게 지켰다. 2차전에서는 무려 구자욱, 강민호, 오재일이 동시에 홈런을 터뜨리며 kt의 추격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불안한 마음에 잠식당한 흐름을 찾지 못한 패권자와 압도적인 기세에 여유로웠던 도전자의 매치업. 도전자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1위는 바뀌었다. 도전자는 패권자가 되어 1위 수성에 전력을 다할 것이고, 패권자는 다시 도전자의 위치에서 1위 탈환에 사활을 걸 것이다. 오랜만에 1위를 차지한 새로운 패권자의 전력이 강할 것인가. 1위 수성을 코앞에 두고 미끄러진 도전자의 사활이 더 간절할 것인가. 삼성은 승리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kt는 패배에 먹혀버린 흐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끝날 때까지 끝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야구에서 그 끝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왕좌에 앉는 팀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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