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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30. 2023

넘나리 좋다고 설레바리

드디어 두 번째 프리다이빙 교육! 쉽지 않은 예약접수가 성사되긴 했는데 입장 시각이 오후 2시. 수심 11미터 2 기압에 눌려질 위장과 방광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속을 비우고 가고 싶었는데 오후라니. 뭐랄까... 금식해야 하는 위내시경을 오후에 받는 기분이랄까~ 물 한잔과 초코바 하나로 허기를 때우고 고성 해양레포츠아카데미를 향했다. 비 내리는 고성 앞바다에는 수많은 요트들이 잔파도에 일렁이며 요트계류장하얗게 장식하고 있었다.

'톡톡..토도도독.. 토독..'

바다를 두드리는 빗방울은 요트 지붕을 두드리고 내 마음도 두드리며 오늘의 배경음악이 된다. 며칠째 늦은 밤까지 과로한 탓에 무척 피곤했지만 풀장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절로 들떴다. 나름 두 번째 방문이라고 벌써 풀장도 다이빙도 모든 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니 슈트 착용만 빼고. 수영복 위에 입는 다이빙 전용 전신 슈트는 워낙 밀착되는 옷이라 입을 때마다 긴장이 된다. 이번엔 잘 입어 볼 요량으로 샤워장 옷걸이에 슈트를 전히 걸어두고 수영복을 먼저 입으며 마음에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걸어둔 슈트를 들고 왔는데.

'어라? 슈트가 왜 안팎이 뒤집어져 있지?'

이상하다 생각하며 정성껏 슈트를 바로 뒤집었다. 그리고 양팔을 야무지게 밀어 넣는데 옆에서 강사님이 어깨를 노크한다.

"이거 회원님 슈트 아닌데요..."

"! 이런..."

슈트가 대부분 시커먼 색이다 보니 착각을 했다. 초짜는 뭘 해도 이렇게 티가 나는가 보다. 새빨개진 얼굴로 다시 옷걸이에 걸려있는 내 슈트를 찾아와 열심히 다시 양팔을 밀어 넣었다. 그래도 첫날보다 훨씬 요령껏 잘 입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는데 강사님의 두 번째 어깨 노크.

"회원님 바지먼저 입으셔야~"

'아니 이렇게 어설퍼서야...'

친근하다는 말은 취소! 나는 상의 슈트를 도로 벗고, 멜빵바지처럼 생긴 하의 슈트를 입은 다음 상의 슈트를 다시 입었다. 첫 번째 교육받던 날과 같이 이번에도 슈트를 입으며 빡쎈 사전 준비운동을 마치고 꼴찌로 샤워장을 나섰다. 괜찮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사전교육을 거친 다음 풀장에 입장하는 순간 벌써 행복지수가 상승하기 시작했으니.


어서 무중력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서둘러 호흡을 가득 들이마신 다음 힘차게 입수! 어라? 수심 3m쯤에서 정지모드. 지난번에 잘 되던 프렌젤 이퀄라이징이 전혀 안된다. 수압 때문에 귀가 아팠다. 잠시 물속에 멈춘 채로 공기를 모아 다시 시도했지만 실패. 또 시도했지만 실패. 아직 가슴에 산소가 많이 남았는데 수면 위로 다시 올라가야 할지 말지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시도했다. 그리고 성공~!


하하하...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가 보다. 나는 남은 호흡으로 수심 11m 바닥을 가볍게 터치하고 올라왔다. 프렌젤에 실패하는 동안 수압에 눌린 귀가 잠시 먹먹했다. 그러고 보니 급히 입수하느라 귀를 덮고 있는 슈트의 후드 부분에 물을 조금 넣어서 이퀄라이징이 잘 되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깜빡했다. 오늘 신난다고 서두르다 계속 실수연발이다.


나는 버디(다이빙 짝꿍)와 눈을 맞춘 뒤 한번 더 부이 줄을 잡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11m 프리이머전을 연습했다. 프렌젤도 잘 되고, 프리이머전도 성공했다. 수면 위로 올라와 회복호흡을 세 번 들이킨 후 버디에게

"I'm OK"

사인을 하는데 나를 바라보는 버디의 표정이 심각하다.

"버디님 코피가..."

아뿔싸. 첫 입수시도 할 때 프렌젤이 안 되는 동안 수압에 눌린 코 점막 혈관이 살짝 터진 것이다. 코로 나온 피는 한 방울 정도였지만 나중에 가래 같은 피 덩어리를 입으로 뱉어냈다.


프리다이빙은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스포츠다. 감기증상이 있거나 피곤할 땐 다이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론시간에 배웠지만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곤이 누적된 상태로 풀장에 등판한 나는 오늘 코피가 터질 만했다는 결론이다. 잠시 마음이 쫄렸다. 빨리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설레발치던 나는 한참 동안 강제휴식을 취했다. 적막한 샤워장의 온수에 내 다이빙 시간을 흘려보내며 반성했다. 몸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와 주지 않는 것은 중년의 몸뚱이에 매달린 각성버튼 같은 것이거늘... 에너지를 좀 더 아껴서 쓰겠노라 몸에게 사과하며 컨디션과 화해했다. 피는 금세 먿었고, 피곤하지도 않고, 기분도 좋아졌다며 강사님께 강력히 어필한 후에야 다시 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핀 다이빙을 연습했다. 발에 핀을 착용하지 않고 다이빙을 하는 방법이다. 핀이 없기 때문에 수중에서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대신 발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양한 영법으로 물속을 누빌 수 있다. 느리게 하강했다 수면위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해파리처럼 가볍게 펄럭이며 수압과 부력을 천천히 즐겼다. 풀장 바닥에 누워 남은 호흡을 가늠하며 수면 위에 떠있는 다이버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속에 머무는 순간을 즐기다 보면 수중에서 숨을 길게 참는 것은 의외로 쉽다. 수심 깊은 곳에서 눈을 감고 웅웅거리는 물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꿈속을 헤엄치는듯 온몸에 감각이 말랑말랑 해 진다. 자세는 엉성했지만 첫 노핀 다이빙은 성공적이었다. 물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이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이빙을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피식 웃음이 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을에 살랑이는 가로수를 파트너 삼아 목청껏 댄스곡을 따라 불렀다. 얼마 만에 내지르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실수해도 좋고 엉성해도 좋다. 경쟁이나 의무가 아닌, 그저 끌리고 좋아서 하는 도전은 자유롭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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