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취미 발견!
염소냄새 가득한 5m 깊이의 풀장이 짙푸른 웅장함을 뽐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사님이 미리 설치해 둔 노란색 부이들이 사각 풀장의 점박이 무늬처럼 동동 떠 있다. 부이에 연결된 줄의 끝은 풀장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부이의 끝이 훤히 보이는 걸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깊지는 않은 모양이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잠시 구경을 했다.
다른 팀의 선배 다이버들이 부이의 수직라인을 잡고 물속으로 쑤욱 들어갔다가 금세 풀장 바닥을 짚고 쓱 올라온다. 훗. 줄 잡고 들어갔다 줄 잡고 나오면 되는 거구나. 간단하네. 핀을 차지 않고 팔을 이용해 줄을 잡아당기며 깊게 들어가는 훈련으로 프리이머젼(FIM)이라는 종목이다. 강사님이 먼저 깔끔한 시범을 선보였다.
나는 공기를 가득 머금은 다음 가벼운 마음으로 5m 풀장의 바닥을 향해 풍덩~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만에 고막이 찢기는 낯선 통증에 화들짝 놀라서 물속에다 공기를 다 뿜어내며 황급히 탈출했다.
"으아아악!!"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수압의 괴력? 귀가 이렇게나 아프다고?
"회원님 프렌젤 이퀄라이징 시도하셨어요?"
"....."
아니 프.. 머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압으로 짜부라지는 고막을 풀어줄 프렌젤 이퀄라이징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면 프리다이빙을 즐길 수 없다던 말뜻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동네 수영장에서 나름 연습도 했었는데 이럴 수가... 아직 입수하지 않은 나머지 일행들은 나의 발버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차례대로 한 명씩 입수와 탈출을 반복하며 이해와 동지애를 싹틔웠다.
"회원님들~ 프리다이빙은 릴랙스가 제일 중요한 운동이에요~"
그렇지. 침착하게.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면 호흡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세상이 멈춘다. 세상의 소리가 아득히 멀어지면서 중력도 사라진다. 수압을 느끼며 아래로 향하는 동안 온몸의 감각이 새롭게 살아난다. 공기로 가득 찬 폐, 짓눌리는 수경과 고막, 앙다문 입술, 펄떡이는 맥박, 물살을 스치는 손끝, 거대한 핀과 함께 우아한 물길을 만드는 발. 이렇게 집중하는 동안 물속이 편안해졌다. 나는 세 번째 입수에서 프렌젤 이퀄라이징에 성공했다! 프렌젤 이퀄라이징을 터득하고 나니 5m 프리이머젼은 어렵지 않았다.
강사님은 진도가 빠른 편이라며 나를 11m 풀장으로 안내했다. 기다란 사각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풀장 깊숙이 커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11m 풀장에서는 덕다이빙(Duk Diving)을 연습했다. 오리가 물에 들어가는 것 같은 자세로 핀을 차며 수직낙하 하는 기술인데 프렌젤이 돼야만 시도하기 쉽다.
다이빙은 안전을 위해 짝을 지어 교대로 물속에 들어가고 나오는데 이 짝을 버디라고 한다. 나의 첫 버디는 다이빙 6개월 차의 나이 지긋한 중년의 선배님이었다. 든든한 버디와 함께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을 천천히 즐겼다. 덕분에 자세는 좀 엉성해도 금세 덕다이빙으로 11m 바닥을 터치할 수 있었다.
"나는 프렌젤 연습하느라 아직 11m 구경도 못했는데... 완전 반칙입니다~"
훈련 첫날 프렌젤도 성공하고, 11m도 찍어버리는 건 드문 일이라며 버디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이 나이에 숨겨진 재능을 찾았나 싶어 어깨뽕이 솟아올랐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차가운 물속에서 강한 수압이 수트와 온몸을 쭈쭈바 짜듯이 압착시키니 방광이 가득 차올랐다. 샤워장에서 10분 동안 낑낑대며 수트를 입을 때 이것을 중간에 벗었다 다시 입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난도의 거사를 계속 미뤘다. 풀장 사용가능 시간은 3시간. 어느덧 남은 시간은 30분.
"자 들어가세요~"
버디가 내 차례를 알렸지만 나는 화장실과 물속을 번갈아 보며 갈등했다. 점점 급해지는데... 그렇다고 처음 본 남성과 나의 화장실 문제를 의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일단 들어가자.
"흐흡!"
호흡을 머금고 입수. 수압은 가득 찬 방광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다급한 신호에 반도 못 들어가고 나와버렸다.
"하하하... 천천히 하세요~"
버디는 내 속도 모르고 릴랙스 하라는 조언을 남기고 물속으로 쏙 들어가신다. 버디가 안전하게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짝의 역할이다. 나는 물속 버디와 화장실을 번갈아 보며 허리를 오그렸다. 아침에 시원하게 들이켠 물과 커피가 원망스러웠지만 후회하기에 너무 늦었다.
"푸하~~~! 자 들어가세요~"
물밖로 나온 버디가 부이에 기대어 내 차례를 알린다. 깊은 물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중력의 해방감을 한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 져 있었다.
"저 전... 아무래도 오늘 그만해야겠어욧!"
마무리 인사라고는 할 수 없는 인사를 던지고 샤워장 안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후회와 반성의 욕지거리를 잔뜩 곱씹으며 몸에 착 달라붙은 수트와 수영복을 벗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방광을 비웠지만 수트를 다시 입을 힘도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함께 왔던 k는 풀장 들어오기 전에 먹었던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가득 찬 위가 수압에 눌리는 통에 구토와 두통을 만났다고 했다. 덕분에 프렌젤은 만나지 못했다며 속상해했다. 다이빙 수트를 입을 일이 있으신 분은 부디 속을 비우고 시도하시기를!
평소에 운동을 좋아해서 요가, 헬스, 등산, 인라인,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었지만 프리다이빙은 유독 더 즐겁게 느껴진다. 적성에 딱 맞는 종목을 찾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무래도 인생취미를 발견한 것 같다! 첫 연습에 실수와 아쉬움이 많았지만 여름 오기 전에 바짝 연습해서 아바타의 키리처럼 여름 바닷속을 마음껏 누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