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을 하다가 물 밖으로 나온것 처럼 순간적으로 입과 코를 활짝 열어 공기를 빨아들이며 눈을 번쩍 떴다. 부풀어 오른 가슴은 이유도 모른 채 헐떡이고 있었다. 캄캄한 방안에는 눅진한 공기와 함께 창을 쉼 없이 두드리는 빗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 흐릿한 동공에 힘을 주고 시계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썼다. 새벽 3시.
천천히 낯익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낡았지만 내게 안성맞춤인 분홍색 베개, 좋아하는 책만 고르고 골라 진열한 소박한 책장.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태블릿, 아들이 리폼해 준다며 촌스러운 핑크색으로 뒤덮어 놓은 작은 선풍기. 발아래 쌔근거리며 자다가 내 인기척에 화들짝 일어나 함께 어리둥절 중인 반려견 '우주'... 아 집이구나. 여기 내 방에 누워있구나. 확인되는 순간 안도의 날숨이 길게 뽑아져 나오며 가슴이 진정되었다.
어디든 머리만 닫으면 숙면을 취하는 타입이라 좀처럼 자다 깨는 일이 없는데 그날따라 그렇게 잠을 깼다. 아마도 꿈을 꿨던 것 같다. 무척 중요한 어딘가로 소중한 누군가와 다급히 달려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결정적인 순간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 달리는 중인지, 방에 누워있는 것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순간적으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낯선 불안과 두려움에 숨이 가빴다.
그때 분홍색 베개와 소박한 책장과 충전 중인 태블릿과 촌스러운 선풍기와 소중한 우주가... 나를 내 방 이불 위로 가만히 데려다 주었다. 거실로 나와 물 한잔 마시며 정신을 차려보았다. 밤새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요란한 폭우가 희뿌연 창밖을 휘젓고 있었다.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잘 자고 있는 아들 방을 괜히 들여다본다. 거실 터줏대감인 몬스테라의 커다란 잎도 한번 쓰다듬어 본다. 잠들기 전에 대충 던져둔 폼롤러가 발에 툭 걸려 스르르 굴러간다. 내 발걸음 따라 종종 걷는 우주의 발소리가 냉장고의 웅얼거림과 박자 맞춘다. 은은한 거실 조명이 비춰주는 구석구석이 모두 잠들기 전과 꼭 같다.
어젯밤 11시와 전혀 다름없는 오늘 새벽 3시가 갑자기 너무 감사하다. 아무것도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안녕한 몸도, 지금의 시간도, 무탈한 가족도. 더 바랄게 뭐가 있겠는가. 잠들기 전 머릿속을 헤짚었던 시끄러운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 상관없다. 괜찮다. 한여름 밤의 후텁한 공기를 달게 들이마시며 남은 두 시간의 숙면을 위해 다시 몸을 뉘었다.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