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로서 베스트셀러는 가능한 챙겨보려 하지만 밀린 책이 많아보니 대부분 때를 놓치곤 한다. 이 책 역시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 이제사 읽게 되었는데 이제라도 읽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당신이 지방에 살고 있는 노동자라면, 당신의 자녀가 지방에서 직업을 구하게 될 예정이라면, 아니 당신의 삶에 '노동'이라는 것이 없지 않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손기술로 먹고 살아온 대기업 정규직 현장 기술자이셨다. 나무를 깎아 거대한 배의 엔진을 만들기 위한 거푸집을 만드셨다. 쇳물을 부어서 엔진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설계도를 그리고, 설계도 대로 나무를 재단하는 주조기술은 오랜 교육과 숙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안동 촌동네에서 무일푼으로 도시에 나와 결혼을 하고,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을 따고, 주조명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성공신화는 오랜 세월 가족모임의 안주거리였다. 그런 아버지가 현장 명장교수로서 가르치는 공장의 젊은이들은 늘 아버지의 눈에 마뜩잖았다. 아니 우리 자식들의 성취도 늘 아버지의 기준에는 부족함 투성이었다. 동생들과 나는 틈날 때마다 아버지의 성공에 훈풍을 불어주던 세상이 끝났나고 토로하곤 했지만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가던 시절 그 경제성장의 선봉장이었던 대기업 정규직의 삶은 정신 차리고 열심히만 살면 따박따박 그 보상을 돌려주던 세상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쇳밥일지'의 저자처럼 지방대학교를 나와 지방에서 그냥저냥 한 기업을 다녔었다. 천현우 작가만큼 가난했거나 지독한 노동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삼 남매가 아버지에게 들려 드리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항변이 담겨있는 듯했다.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고는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당신이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당하고 혹독한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게 아니라고 작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 나이부터 끝없이 이어졌던 불행의 열차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울분에 가슴을 치고,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 소도시에 살며 소위 '지잡대'를 나온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열악한 가정환경에 처한 천현우 작가 같은 젊은이들은 다른 이들이 꺼리는 선택지를 잡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영악한 자본주의는 그들의 어쩔 수 없음을 이용해서 힘없고 목소리 없는 그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한없이 착취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부당함이 공정한 기회와 노력이라는 찌그러진 축에 의해 합리화되고 있고, 세상이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최 답답하고 아니다 싶은 이 현실을 누군가는 제대로 꼬집어 말해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이야기를 '쇳밥일지'의 천현우 작가가 풀어내었다.
작가는 마산과 창원의 수많은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온 용접공으로서 현장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냉철하게 전하고 있다. 소설가의 꿈을 품었던 작가의 특별한 이력 덕분에 보통의 현장직 노동자들이 갈무리해 내지 못했던 그들의 삶이 소위 '먹물'들의 사고방식에 먹힐 만한 언어로 가공되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다. 잘 가공된 정도가 아니라 글빨이 장난 아니다. 도서관에서 책 정리 중에 눈에 띈 이 책을 들춰보며 잠시 프롤로그만 읽어봐야지 하고 펼쳤다가 30분 동안 덮지 못하고 강제독서를 했을 정도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대도시로 떠날 수 없는, 짊어진 부양가족의 무게가 큰, 가난의 굴레가 큰, 공부라는 경쟁에서 밀린, 세상이 무능하다고 낙인찍어버린 사람들에게 세상은 자본주의 논리 하나로 참 가혹하게 군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으니,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마땅하고, 혹사당하거나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어디에도 적어놓진 않았지만 작가가 살아낸 노동현장의 현실은 그러하다고 거칠게 말하고 있다. 정말 당연한 것일까?
고학력자들에게만 허락된 '기회'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권이다. 능력주의의 한계와 허상에 대해 작가는 대한민국 노동현장의 민낯을 까발리며 고발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떠올랐다. 젊은이들의 숨통을 조여대고 있는 것의 실체를 훤히 들여다본 기분이다. 기성세대는 쉽게 이리 말한다. '젊은 사람들 취업난 그거 다 배부른 소리야. 중소기업은 인력난이 심하다고 난리잖아. 능력이 안되면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데 가면 일자리가 차고 넘치는데 배가 불렀어' 심지어 같은 현장 기술자의 삶을 살아온 내 아버지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하청기업 노동자들의 삶. 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은 '쇳밥일지'까지 읽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현장의 부조리함과 가혹함을. 기술도 쌓이지 않고 경력도 쳐주지 않을, 젊음이 소모되기만 하는데도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 그 힘든 생의 굴레 속에서도 운동, 독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낸 젊은 작가가 너무너무 기특하고 감사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