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사서 필수 덕목은 근력
별일 없는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보통 10시나 11시다. 지난 새벽 늦게까지 끄지 못했던 넷플릭스 때문이다. 아... 익숙하다. 하루의 반절이 날아갔지만 직장인에게 주말 늦잠은 미덕이 아니겠는가? 세수도 안 하고 귤을 까먹으며 뒹굴거린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아점을 먹는다.
'매일 글 쓰기로 했는데...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한것 같아... 그래 본능에 충실한 휴식이야 말로 진정한 쉼이지!'
쌓인 설거지를 뒤로하고 군고구마를 오물거리며 머리맡에 굴러다니는 소설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유튜브의 세계를 허우적 대고 있다. 그리고 뭔가 계속 먹고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쉬고 싶지만 팔이 저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잠시 일어나 창밖을 보면 아뿔싸! 어느새 저녁노을이 어스름히 깔리고 있다. 이대로 밤이 되면... 잘 쉰 것 같은데 뭔가 허무할 것은 애매~한 기분이 든다. 이때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는 엉망인 집을 못 본 체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볼록해진 배를 흔들며 집 앞 헬스장을 간다.
우선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을 어떻게든 후회 없이 마무리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근육을 키운다, 살을 뺀다 하며 헬스장을 찾지만 그런 이유로 하는 운동은 30대때 접었다. 내게 운동이란 쉰내 풍기며 널브러진 내 안의 먼지를 탈탈 털어 정신 차리게 한 다음 어제 가던 길 위에 나를 다시 세워놓는 채찍이자 당근이다. 그래서 꼭 헬스가 아니어도 좋다. 등산이든 수영이든 운동은 다 같은 효과를 낸다. 게다가 사서라는 직업은 의외로 상당한 근력을 요구하는 직종이라 운동 없이 정년까지 버티다간 근골격계 질환을 직업병으로 얻기 딱 좋다. 도서관 장서점검 하다가 인대가 늘어나 팔깁스를 하거나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링거투혼으로 버티는 선배 사서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운동은 정년퇴임을 위한 기본 습관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걷기를 10분만 해도 벌써 숨이 가빠 오면서 땀이 나고, 온몸에 피가 돌면서 진짜 살아 있다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30분을 뛰고 나면 심장박동 소리가 머리를 비워준다. 비워진 머릿속에 일상에서 놓친 생각들이 목표인 듯, 잡념인 듯, 계획인 듯 오락가락 떠다닌다. 그러거나 말거나 20kg짜리 쇳덩이를 20번씩 3세트 들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헉헉헉... '
가빠지는 호흡만큼 머리는 맑아진다.
'두 개만 더... 5kg만 더.... 한 세트만 더.... 헉헉헉...'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듯 숫자 세기에 집중하다 보면 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바짝 흘린 땀만큼의 자신감을 길어올린다.
'오늘도 운동해냈다! 잠시 포기했었지만 괜찮아. 지금 다시 시작하면 돼.'
마음에 긍정이 차오른다. 오늘 뭘 놓쳤는지, 뭘 하고 싶은지 일사불란하게 욕망이 솟아오른다.
스트레칭을 하다 불현듯 오늘의 글감이 머리를 스치면 재빨리 휴대폰에 받아 적는다.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그래 할 수 있어. 별거 아니야. 빨리 가서 쓰고 싶다!'
힘을 썼는데 희한하게 힘이 생긴다.
그렇게 집에 오면 밀린 집안일을 휘리릭 해 치우고, 쌓아놓은 책을 좀 읽고, 오늘의 글을 쓰고... 게으름 부린 시간만큼 자그마한 성취를 이루지만 마음 편한 마무리를 할수있다. 크든, 작든, 잘했든, 못했든 간에 오늘 했다는 게 중요하다. 목표하는 습관에 작은 점 하나 찍었으니까. 내일은 그 점 뒤에 다시 점을 찍으면 된다. 잘 안되면 얼른 헬스장부터 뛰어갔다 오면 된다. 운동은 긍정을 길어올리는 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