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출근길 햇살이 폭닥하다. 흐드러진 벚꽃과 아기빛 새싹들이 작정하고 행인들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아침이다. 봄바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여봐도 별 수 없다. 칙칙한 아스팔트마저 화려하게 수놓은 벚꽃잎들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동글동글한 숯검댕이들처럼 내 발길 따라 우르르르 구르며 짓궂게 놀려댄다.
'쯧... 이런 날 출근이라니~ 뒷동산이라도 올라가야지~ 가자 가자~'
그러나 나는 월급을 사랑하는 책임감 투철한 직장인이 아니겠는가! 이성이 감성을 이겼고 나는 무사히 출근했다.
아... 하필 금요일. 학교 뒷문 바로 앞 실개천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의 잔치를 창너머 잠시 구경할 짬도 없는 날이다. 0교시부터 4교시.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도서관을 풀가동 한 다음 나는 순식간에 방전된 배터리 꼴이 되었다. 급식소 한구석에서 늦은 점심 숟가락을 드는데 식판을 기준으로 11시에서 4시 방향으로 창밖의 벚꽃 잎이 함박눈이라도 되는 척 펄펄 날리고 난리다. 칫. 사방이 핑크빛 함박눈으로 반짝이는 꼴이 샘나서 퍼석한 얼굴을 식판에 들이박고 식사에 집중했다. 먼저 식사를 끝내고 나가던 K와 G가 문득 음흉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돌아와 나를 둘러싸고 앉는다.
"샘아~ 저기 좀 봐봐~ 가자 가자! 우리 잠~~~ 깐만 걷고 오자아앙~"
K가 봄바람 뺨치게 나를 꼬신다. 오전에 밀린 업무와 산더미 같이 쌓인 책들이 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뭐라 하실지도...
"아~ 내가 커피 쏠게요오~" 생전 안 그러던 G까지 거든다. 이쯤 되면 넘어가주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은가? 아직 오삼불고기를 다 먹지 못했지만! 짭조름한 생선구이 반토막도 과감히 포기하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에잇. 걸으러 갑시다~!"
우리는 그림형제의 동화 속 브레멘음악대를 찾아 떠나는 당나귀, 개, 고양이가 되어 키득키득 학교 뒷문을 살곰히 밟았다. 맙소사! 봄날! 평일! 낮에! 실. 시. 간.으로 만끽하는 봄기운의 에너지는 당나귀, 개, 고양이의 낡은 관절도 뜀박질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시키는 대로 후루루루 날리는 꽃잎. 햇살과 벚나무의 콜라보가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나무그늘. 벚꽃 잎이 머리카락 사이, 옷깃 사이에 마구 내려앉는 지금.
마음씀씀이가 늘 한도초과지만 화수분이라 사는데 무방한 K, 우뇌부터 좌심방 우심실까지 논스톱으로 따뜻한 G, 이토록 멋진 사람들과 눈부신 이 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바로 지금.
행복하다. 행복의 기억이 봄볕에 증발되 버리지 않게 단단히 붙들고 싶다.
"꺄아아아~!! 꺄아~~ 우와아아~!!!" 나는 돌고래 창법으로 허공에 기억을 새겼다. K는 순식간에 12살 소녀가 되어 산책로 한가운데서 점프를 해 댄다. 찍으란다. 공중에 떠있는 자신을. 부끄러움은 G의 몫이다.
넘치는 햇살을 오른손으로 살짝 가린 채 실눈으로 산책로를 훑노라면 달큰한 풀내음이 핑크색 벚꽃잎과 범벅이 된 꽃무더기들을 볼 수 있다. 떨어진 벚꽃잎들이 민들레 초록 이파리를 둘러싸고 꽃다발인척 바닥에서 한번 더 화려하게 피었다.
그 옆에 손톱만 한 들꽃이 오종종 피어 꽃다발 장식을 보탠다. 줄무늬 보라색 꽃잎 4장으로 앙증맞은 미모를 자랑하는 이름 모를 꽃을 K가 쓰다듬었다.
"나는 항상 이 꽃이 그렇게 예쁘더라~"
소녀 같은 K와 돌고래 같은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따뜻한 G가 네이버 스마트렌즈를 꺼내들었다.
"으음~ 너는 이름이 뭐니~?"
잠시의 버퍼링 후 눈앞에 있는 이름 모를 꽃과 똑같이 생긴 꽃 사진이 스마트폰 화면에 짠! 나타났다.
'큰 개불알 풀'
으악~!! 뭐? 뭐래니? K는 큰 개불알 풀을 쓰다듬던 손을 세차게 털었다. 우리는 큰 개불알 풀 앞에서 어이없는 이름에 어이없어 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다시 학교 후문을 밟을 때까지 눈물이 찔끔 나도록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번 더 허공에 행복한 기억을 새겼다. 방전됐던 배터리 충전이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