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이렇게 듣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벌써 6회가 넘어가고 있는 항암으로 기력이 많이 쇠하였다.
생각이 까맣게 물들어 버린 듯 멍한 눈동자. 가냘퍼진 어깨. 검은 얼굴과 혼자 서 있을 힘이 부족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휠체어. 그 휠체어에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대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남편이 차를 주차장에서 가져오는 동안 그대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어머님은 계속 이런저런 말들을 한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닌지 모를 말들을 섞어서 내보낸다. 풍채도 체력도 나보다 훨씬 좋으셨던 분이었다.
워낙 강건했던 지라 지금 약해진 모습에 적응되지 못하고 자꾸만 기골이 장대하던 당신의 60대 시절이 떠오른다. 그 순간 모든 게 서글퍼져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와중에 어머님 말에 맞장구치느라 입은 바쁘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누르기도 어지간히 힘들었다.
종합병원인 만큼 경한 병으로 여길 오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는 나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어머님을 번갈아 가며 힐끔힐끔 보며 지나간다.
단 한 사람 휠체어에 앉아있는 당신만 나를 보지 못했다.
당신의 젊은 날을 알지 못했다면 그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로 감정의 날이 선 며느리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다지 슬프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멈춰보려 고개를 들었더니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보인다. 그토록 좋아하는 가을날의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도 이토록 슬플 수 있구나 싶었다.
항암 후 처음으로 칼국수가 먹고 싶다 하신다.
"오늘은 이상하게 칼국수가 먹고 싶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그냥 먹고 싶다고까지만 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그 미안하다는 말은 또 너무 아프다.
젊은 시어머니였던 그때 크고 작은 상처를 안겨준 그때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한마디 하셨다면 당신을 그동안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싶었다.
아프신 뒤로 고맙다. 미안하다. 를 자주 말씀하신다.
젊었던 그 시절 그때는 절대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모아 모아 이제 하시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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