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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Feb 07. 2024

버드와이저 6병은 선물이라 했다.

안녕, 하이난

처음 여행 장소를 중국으로 정할 때 아이들은 살짝 불안해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갖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중 가장 걱정을 한건 치안과 위생이었다. 중국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하이난 해화도는 여행지라 그런지 치안도 위생도 다행히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호텔 내 흡연금지라고 되어 있는 문구가 어색하게도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정네들이(대체로 나이가 좀 있었다) 드물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크게 충격을 받았더랬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실내 흡연금지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살면서 처음 본 광경이기에 놀랄 만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낯설었고 동시에 어린 시절 추억의 장면들이 소환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70-80년대 방안에서까지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저녁 산책을 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음악이 흐르는 선술집으로 향했다. 바람과 물살을 느낄 수 있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평온했다. 간단히 맥주 몇 잔 마시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메뉴판을 열심히 공부해 어렵게 버드와이저 6병에 기본안주가 있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선결제라

계산하려 알리페이를 켰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계속 로딩만 반복되다 결제오류가 뜬다. 내 것도 남편 것도 마찬가지다. 가게 쥔장과 종업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참을 시도했으나 결국 오류다. 지갑을 보니 갖고 있는 위안화로 계산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달러가 되냐고 했더니 받지 않는단다.


여행 동안 한 번도 오류 난 적이 없어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때 속으로 선결제라 다행이다 싶었다. 맥주가 이미 배속으로 들어가 버린 뒤라면 어쩔 뻔했는가. 사이 냉장고에 차갑게 있던 버드와이저 6병은 방울방울 뽐내며 테이블에 배달 됐다.






우리가 난감해하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쥔장이 남편 손을 지그시 잡더니 번역기를 돌려 말한다.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이건 제 선물이니 그냥 드세요" 너무 놀라고 미안해서 괜찮다고 가족모두 손사례를 쳤는데도 다시 한번 남편의 손목을 꼭 잡는다.


아직 어린 둘째는 "저 사장님이 아빠 좋아한다는 거예요?  엄마, 이제 어떡할 거예요? 아빠 고백받았잖아요!"라고 장난치는 사이 첫째 사랑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누가 주는 거 그냥 먹으면 안 돼. 마약이라도 넣었으면 어쩔 거야. 그리고 우리 납치해갈지도 몰라요"라며 안절부절못한다. 범죄영화를 너무 봤다 싶었지만 순간 호의가 무섭긴 했었다.  


결제가 안되는지 그리고 상황은 뭔지 가이드 물어보자고 사랑이가 제안을 했고, 결국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쥔장을 바꿔달라고 해서 핸드폰을 건네주고 얼마뒤 종업원이 오더니 가이드분이 결제를 하셨다며 편히 드시면 된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해 준 가이드께 감사하다. 물론 다음날 결제금액에 소정의 팁을 더해 마음을 전했다.)


그제야 휴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껏 당황하고 났더니 맥주는 더 시원했다. 우리나라도 불과 20여 년  전에는 이런 정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렇게 이유 없는 호의를 받는 것이 불편하다 못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좀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는 말 그대로 여행지다. 오늘 왔던 사람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 아니 다시 안 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여행객을 상대로 맥주를 그냥 준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가능할까.


협곡처럼 좁아진 나와 남편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맥주로 목을 축인 남편은 쥔장과 허그를 했고 우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죽기 전에 다시 보기 힘들 사람이지만 참 오랜만에 마음을 데워준 사람. 감사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족과 함께 온 중년남성이 결제가 안 돼 쩔쩔매며 잘 보이지 않은 핸드폰 화면을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면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하는 그 진땀 빼는 모습에 호의를 베풀기로 했던 것 아닌가 싶다.




사진출처: In my 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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