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봉봉 Oct 20. 2017

(서점 창업 결정까지) 수상한 작업실에서의 조우

  어느덧 31살이었다. 직장생활은 3년차였다. 워낙 많은 일감이 몰려들 무렵이었다. 하루치 기력을 소진한 채로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문이 닫힐 때마다 유리창에는 피곤한 얼굴을 한 직장인의 표정이 나타났다. 나는 뺨과 뒷목을 매만지며 오늘도 겨우 버텼다고 안도했다. 2016년 11월 23일. 창동으로 향하는 열차 안이었다. 책방을 차리기 11개월 전이었다. 

 

  그때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째서 도봉구 창동 같은 변두리에서 문학 스터디를 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초창기 스터디 모임장소이자 도도의 작업실로 쓰이던 작은 공간. 지금은 인테리어를 마치고 '짜잔' 서점이 됐다.


  그날은 도도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엽서시문학공모라는 온라인 문학관련 커뮤니티에서 한 주 전 게시물을 올렸던 게 그녀였다. 소설이나 시를 쓰기 위해 모이는 서울지역 문학 스터디는 주로 홍대나 강남 내지는 종로에서 자리를 잡는 게 일반적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모든 이유를 요악하면, 그곳이 결국 ‘중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도는 어째서 중심을 피해 변방에서 스터디를 연 것일까. 직장이 있는 종로1가에서 창동으로 향해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로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문학창작 동호회를 찾던 중에 공교롭게 찾은 스터디였다. 내가 사는 곳은 강북구에 가까운 창동이었고, 작업실은 노원구에 가까운 창동이었다. 걸어서는 20분이나 걸리지만 아무래도 불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렴 창동에 스터디가 생겨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나로선 취미를 통해서 삶의 지지부진과 무기력을 털어내야만 했고, 그 장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았다. 체력이 부쩍 부친다고 느끼고 있었다. 강남이나 홍대까지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더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그곳들은 어쩐지 나를 소외시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서울의 동북권역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가족의 전세 계약에 따라 옮겨다녔는데 동북권에 속하는 성북구와 강북구, 노원구와 도봉구를 넘나들었다. 이곳에서 아늑했다. 


  작업실은 창동역 1번 출구에서 5분 거리였다. 게시글에 따르면, 도도는 도봉경찰서 근처 건물에서 작업실을 얻어 꾸몄는데 조명 등을 통해 아늑한 공간으로 연출했다고 했다. 글을 쓰고 합평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설명이었다. 모임형태는 스터디였지만 내용은 강의에 가까웠다. 앞서 나는 게시글을 확인하자마자 도도에게 스터디에 관심이 있다고 메일을 보냈다. 도도는 즉시 답장을 보내왔다.

  메일에 따르면, 스터디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째는 도도와 함께 글을 쓰는 그룹이었다. 그녀는 이 모임은 프로를 지향한다고 했다. 주로 문창과 졸업생, 방송작가 경험이 있는 이들로 꾸려질 예정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4번 만나는 모임이었다. 미팅 시간은 평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문창과에서 진행하듯 고강도 합평을 할 거라는 엄포도 뒤따랐다. 공간 사용료는 월 10만 원이었다. 


  둘째는 비전공자 그룹으로 자기 만의 글쓰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개설되는 수업이라고 했다. 그녀는 메일에 ‘과제 및 첨삭이 있는 글쓰기 수업’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메일을 받아본 뒤 나는 아무렴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문창과도 아니었고, 방송작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랬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문창과와는 커리큘럼은 다소 다르지만 문학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많았다. 나는 그점을 설명하고 첫 번째 모임에 들고 싶다고 했다. 메일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일단 작업실에 방문해서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하자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약속을 잡았다.     


  나는 작업실이 있는 건물에서 한참 헤맸다. 1층엔 타이어 가게가 있는 건물이었다. 나는 그런 곳에 작업실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오피스텔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입구에서부터 ‘여긴 그저 타이어 가게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타이어 가게에서 양파를 찾는 것만큼이나, 문학창작 스터디를 찾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메일을 통해 받은 주소는 명백히 그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건물로 들어갔다. 

  2층 복도에서 도무지 작업실을 찾지 못해 또 한번 헤맸다. 방은 네 곳이었는데, 한 곳은 학원이고 두 곳은 세무사 사무실이다. 그럼 남은 곳은 하나지만, 나무에 아이보리색 페인트를 칠한 문에는 ‘한국타이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그건 아무리 봐도 한국타이어라는 뜻이다. 어떻게 달리 생각할 수 있겠나.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내 발소리에 인기척을 느꼈던 모양인지, 한국타이어 사무실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 나타난 파란색 수납장. 환한 웃음같은 색상. 공간이 나를 환대한다.


  "봉봉 씨?"


  나는 묻고 싶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 되레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가운데 내 입에서 나온 말도 “도도 씨?”였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첫 통성명이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