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끝 변두리인 도봉구에 독립서점이라니
우선 위치. 서울 도봉구는 경기도의 끝자락과 맞닿은 경계였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곧장 오가려면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길목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게 친구들의 주장이었다.
임의의 A지점과 B지점을 잇는 긴 직선이 있다고 치자. 문항은 A와 B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선 중간에 아무 곳에나 점을 찍고 그걸 도봉이라고 부르든 코끼리 팥죽이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여하튼 도봉은 영원히 A와 B가 될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그들에 따르면, 도봉은 그저 영원히 스쳐 지나가는 직선상의 임의로 찍은 한 점과 같다. 도봉에 뭐 볼 게 있다고 들를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플랫폼61이라는 문화공간도 있고, 둘러보면 재미있는 장소도 많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들은 "건대나 홍대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나, 망원동이나 후암동처럼 젊은 예술가들의 핫플레이스로 옮겨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 나는 ‘도‧도‧봉‧봉’이 그런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도도봉봉은 내가 책 구매 비용과 서점 인테리어비를 대고, 도도 씨(38세‧여)가 운영키로 한 서점이다. 서울 도봉구 창4동이다. 우리의 목표는 소외된 변방에서, 중심이 가지지 못하는 독특한 지역성을 토대로 새로운 아지트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독특한 문화적 자장을 가진 매력적인 장소로 가꿔보자는 생각이었다. 돈은? 알아서 차츰 벌리지 않을까. 어쨌든 사람이 먼저 드나드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실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나이브하게 보이는 건 사실일 것이다.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을 묻는 질문에 가소롭다는 듯이 일축하며 ‘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라고 대의명분으로 대꾸하는 옛 성인 시늉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움직이면서 해법을 찾고 싶을 뿐이다. 삼성이나 LG처럼 되려는 것도 아닌데, 좀 좌충우돌한다고 문제될 거 있나 싶다. 그뿐이다.
이 역시 설득력은 좀 떨어지는가 보다. 친구들은 절대 내 의견에 굴복하는 법이 없다. 뭐, 그것 역시 그들의 자유니까.
이들은 도도봉봉의 주변 환경도 문제라고 했다. 이는 서점이 다루려는 인디출판물과 아기자기한 문구류는 젊은층, 특히 소비능력을 갖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해야 한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반면 우리 서점을 보자. 건물의 옆 동은 전자제품 매장인 하이마트가 있고 그 바로 옆은 도봉경찰서다. 서점 건물 맞은편엔 노원세무서가 있다. 아무래도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찾을 이유가 별로 많지 않은 곳이다. 인정한다.
나쁜 놈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나이불문이니까 경찰서에 끌려오는 젊은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들이 조서 작성을 마무리한 뒤 정갈한 마음으로 서점에 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세금이라곤 주민세 정도가 고작일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세무행정에 반발해 세무서로 쫓아갈 가능성 또한 낮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도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세무서에 갈 일은 지금껏 없었다.
그럼 이곳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점원을 대상으로 서점 마케팅을 해보면 어떨까.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 형사쯤으로 보이는 인상 궂은 남자나 하이마트 휴대폰매장 점원으로 보이는 셔츠차림 젊은이가 담배를 입에 뾰족하게 문 채로 각 건물의 모서리로 숨어들어가다가 우리 건물 앞까지 밀려오곤 했다. 이들은 서점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나의 의문에 친구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차라리 책이 아니라 담뱃갑을 파는 편이 나을 걸”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다른 상품을 파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게 이곳에 독립서점을 차리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인 셈이다. 물론 담뱃갑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건 편의점에서 파는 편이 나았다. 나와 동업자가 팔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건물 내 서점 위치도 엉망이라고 했다. 도도봉봉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 2층에 위치했다. 1층은 타이어 가게였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 타이어가게 건물에 입주한 서점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그건 나도 그렇다. 그러나 타이어 가게는 대기업의 직영점이다. 그리고 그 대기업이 이 건물의 주인이다. 뭐, 내 입장에서 쫓아내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다음 생애에 건물주로 태어난다면, 친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타이어 가게의 1층 입주를 불허하며 “미안하지만 여긴 서점이 들어설 자리예요”라고 말할 생각이다. 물론 이번 생애에 그런 말을 하는 건 무리다. 망상이다.
같은 2층엔 세무사 사무실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 입주했다. 도도봉봉은 이중 가장 눈에 덜 띄는 곳에 있다. 2층 복도에 들어서면 세무사와 학원이 눈에 띈다. 도대체 도도봉봉은 어디에 있지, 하고 의문을 가지고 복도가 골목처럼 한 번 접히는 지점에 들어가야 책방의 입구가 보인다. 그러나 그 복도는 좁고 어두워서 도무지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는 게 지인들의 불만이었다. 서점이라기보다는, 뭐랄까, 탐정사무소 같은 위치라고 했다.(응?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과연 그러고보면. 나도 그 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11월 말,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책방을 차리기 11개월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