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만들어 봅시다! 우선 이름 짓기!
이는 단순하지만 교배가 어려운 생각이었다. 근대적 행정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지자체명에 발랄함을 더하자니. 탭댄스를 추는 관료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공무원이라고 그런 춤을 추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그런 것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라라랜드와 같은 뮤지컬 영화도 아니라면, 근무시간에 갑자기 탭댄스를 추는 관료란 곤란한 존재다. 서점 이름이 그처럼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아야 했다.
한편으론, 발랄함과 지역성을 상호 안에 충족하고 싶다는 요구는 어찌보면 마땅한 것이기도 했다. 아무렴 독립서점이니 당연히 기존 서점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커뮤니티적인 속성을 담아내자는 것은 우리 서점이 지닌 야심이기도 했다. 개별적으로 합리적인 생각들이 왜 붙여 놓으면 이상해지는 것일까. 뾰족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생각에 지칠 때면, 내 머릿속에서 책방이름을 생각하던 행정가들이 종종 에라 모르겠다며 일제히 탭댄스나 폴댄스를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도봉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면 책방 이름이 선명해졌다. 책방이 지향하는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다른 독립서점들 역시 일반적으론 자신이 지니는 방향성과 목표를 담백하게 책방이름에 담아낸다.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커뮤니티성을 표방하지만, 지역 이름까지 서점명에 결합하는 경우는 좀 드문 것 같다. 서점을 차릴 때 가지는 마음가짐 등을 담는 경우가 많다. 근사한 서점이름은 그러한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아무책방’의 아무의 경우 ‘아름답고 무용한’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독립책방이 가지는 우아하고 고독한 멋이 있다. 무용하다는 것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쓸모로서 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껏 도도하다. 아름답고 무용하다는 말은 상징적으로 문학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리라. 인문학과 문학서적을 선별해 취급하는 서점의 위상과 자부심까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노원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51페이지’도 근사한 작명이다. 절반을 의미하는 50이라는 숫자에서 1을 더해 새 출발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퇴사후 서점을 차린 서점주인과 서점의 특성과 취향이 서점 이름 속에서 도드라진다.
도봉이라는 지역명은 차치하고서 이름을 구상해봤다. 우리 서점 역시 여러 취향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쉼터처럼 여겨지길 바랐다. 거기에 노원세무서와 창4동주민센터, 도봉경찰서로 둘러쌓인 형세를 따라 공무원들이 많이 찾진 않을까. 그들은 어떤 콘텐츠를 원할까. 이런 고민들을 담아 내가 처음에 제안한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그런 이름인 거죠?”
도도가 물었다.
나는 도봉구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 서점이 제공하는 인문학과 문학, 사회학을 비롯한 모든 콘텐츠가 결국은 거칠게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생존 매뉴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기 힘으로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교류의 장이 모두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지 않겠느냐고.
도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듯하게 말해도, 이상해.”
나는 지역명은 억지스럽게 우겨넣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떠오른 이름은
‘도봉바이도봉’
도봉이라는 지역이 가진 저력을 곱절로 하자는 뜻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영문명으로 생각한 DBBYDB가 디자인적으로 군더더기 없어 보인다는 것도 한몫했다. DB라는 두문자어가 가진 데이터베이스라는 뜻도 좋게 느껴졌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기록과 누적의 형태로 데이터베이스화한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포에 위치한 유명 독립서점인 '북바이북'을 연상시키는 게 문제였다.
나는 혼자서 도봉을 종이에 끄적이다가 언뜻 "'도도봉봉'은 어때요?"라고 물었다.
도도는 그때 나를 향해 '정말 아무 생각이라곤 없는 인간이구만' 하고 나에게 힐난의 눈초리를 보이는 듯했으나, 이내 "나쁘지 않은데?"라고 대꾸했다.
이렇게 적고보니 별 생각없이 그리 된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책방이름은 도도봉봉이 됐다.
누군가 "그래서 언뜻 떠오른 걸 별 생각없이 채택한 거잖아?"라고 말하면 부정할 수 없지만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될 거 같다. "하여간 고민은 많이 했다니까"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