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가 녹았다. 슬리퍼는 비틀어졌다.

목동정원담(談) - 도시 속 작은 숲 이야기

by vivid

연이은 폭염과 소나기로 4일 만에 정원에 나갔더니 정원에서 신던 고무 슬리퍼는 모양이 변형되어 쪼그라들어 있었다. 운동화는 접착제가 녹았는지 밑창과 윗부분이 분리되어 버렸다.


정말 이글거리며 뜨거운 한 주였다. ‘덥다’는 말 대신 한숨같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햇살, 높은 습도, 언제 쏟아부을지 모르는 소나기까지 혼을 쏙 빼놓는 여름이다.


그래도 며칠 만에 나가는 정원에는 뜨거운 햇살과 충분한 물을 먹고 쑥쑥 자란 딜과 바질이 한가득이다. 루꼴라 잎을 애벌레가 너무나도 인정사정 없이 먹어치우는 바람에.. 속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그 와중에 딜은 나무처럼 곧고 풍성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기쁨을 주었고, 아직 추운 봄에 심어 비실비실했던 바질은 여름이 되니 제철을 만난 것 처럼 하루가 다르게 잎이 커지고 있었다.


워낙 햇볕이 뜨거워서인지 보드라운 바질잎이라기 보다는 다소 거친 느낌이긴 하지만, 바로 딴 허브에서 맡을 수 있는 신선한 향은 참 향기롭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며칠 만에 나가면 또 마주해야하는 귀찮은 친구. 잡초. 정원석을 미처 재정비하지 못한 공간에 한 가득 무성하게 자란 잡초는 주말 아침, 부지런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촉진제다. 무한루프처럼 계속 뽑아줘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 또한 초록초록한 잎사귀로 이 여름을 느끼게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곤 한다. ‘굿모닝, 너도 그새 더 자랐구나?’


수확한 허브를 풍성하게 올린 따끈한 피자와 갓 딴 향긋한 애플민트를 찢어 넣은 얼음가득 모히또 한잔이면, 이 여름이 참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나의 땀 흘리며 즐거운 주말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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