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의 본질에 대한 단상
'힙'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려본다. 우선, 플렉스 flex라는 단어가 어쩌다가 본연의 뜻인 구부리다에서 돈 자랑의 의미를 갖게 됐는지 아리송한 만큼, 엉덩이를 뜻하는 영단어가 '힙하다'의 의미를 갖게 됐는지 종 잡을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는 것은 다 이런 식인가? 힙하다는 것, 힙스터라는 인물을 봐도 힙의 뜻이 전혀 와닿지가 않아 힙의 예시도 힙이라는 단어의 이해에 도움이 전연 되지 않는다. 뭔가 트렌디하고 정제되지 않은 것을 지시한다는 인상은 있는데 내가 느낀 점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과거의 묘연한 인상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힙'이다. 제품 사진을 찍으면서 "오, 힙해. 힙해.", 새로운 기획을 하면서 "오, 힙해. 힙해.", 탁월한 것을 발견하면서 "오, 힙해. 힙해.". 힙에 미친 새끼, 일명 힙미새가 된 것이다. 힙하지 않으면 아주 간단한 것도 우리 가게에 입장할 수 없고, 힙하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것도 인스타그램에 게시될 수 없다. 반드시 내 마음속 힙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이렇게 내가 힙에 집착하는 까닭은 내가 전혀 힙한 사람이 아니라는데 있다.
나는 주로 남들이 어린 시절에나 좋아하던 디즈니,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돌 따위에 아직도 집착하고, 단 두 번만 입어도 "이 옷 자주 입네."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옷이나 장신구가 옷장 및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으며, 멋진 인테리어는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장서가라 집구석구석에 책들, 심지어 최근의 최대 관심사인 재테크 서적이 자리하고 있다. 심심하면 장원영이 춤을 추고 있는 릴스를 보고, 핑크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맡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둔 힙스터를 본 일이 있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이 힙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나는 힙해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힙하다는 인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힙하지 않은 나는 카페를 운영하는 5년 간, 특히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를 운영한 3년 여의 세월 간 집중적으로 힙하다고 하는 것들을 연구하였는데, 나처럼 힙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 결과를 발표한다. '힙하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음', '애쓰지 않음'에서 나온다. 무슨 소리냐고? 타고나길 특이한 개성,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트렌디함이 힙이다. 설령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더라도 그 노력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천의무봉 같은 독특함이 곧 힙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힙스터라고 하는 사람의 체형은 시쳇말로 '개말라인간'이다. 식욕을 포함한 어떠한 욕망도 드러나지 않아야 힙이기 때문이다. 양껏 식탐을 부리는 힙스터는 상상하기 어렵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마트에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 있는 샤니 빵을 사려고 아침부터 줄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 이걸 보고 힙을 떠올릴 사람이 있을까?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러 마트에 오픈런을 하고, 동네 편의점을 순회하는 일은 힙하지 않다. 그러나 잼민이 시절 모아둔 포켓몬 스티커 도록이 집 한 켠에 무심히 남아있어서 인스타 스토리에 찍어 올린다면 힙이 될 수 있다.
힙스터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지만 자연스럽게 독특하고 트렌디한 그 취향 덕분에 남의 이목을 끈다. 남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서 남의 이목을 끈 것은 아니다. 여기서 힙의 역설이 발생한다. 나는 왜 영원히 힙해질 수 없는가. 힙하기 위해 너무나 노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힙해질 수 없는 것이다. 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 카페 운영자에게는 처절한 형벌이다. 매일 밤 다른 이들의 기발한 인테리어와 독특한 소품과 훌륭한 사진 실력이 나를 괴롭게 한다. 애쓰지 않은 무심함, 애를 쓸수록 닿을 수 없는 그 무심함이 나를 좌절케 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이 계정 저 계정,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내 가게를 힙하게 만들어줄 아이디어를 찾아 헤맨다.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데는 3년이 걸렸다. 3년의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이라는 쑥과 핀터레스트라는 마늘을 먹은 나의 가게도 계속해서 진화했다. 사진에 더 매력적으로 찍히도록 조명을 바꾸고, 유행하는 식물들을 키우고, 작고 불편한 가구를 들이고. 우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주말에 길게 늘어선 압구정 멋쟁이들을 보고 있자면 감개무량하기까지 하다. 힙스터는 애쓰지 않거나, 애씀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후자로, '생존형 힙스터'로 거듭난 것이다. 생존형과 힙스터가 병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힙을 타고나지 않은 나와 먹고살려는 자영업자인 내가 치열한 공방 끝에 낸 합의점이다. 오래 괴로워한 후 얻어 낸, 이 해학이 넘치는 정체성이 마음에 꼭 들어 친구들을 만날 때면 힙해지려고 하는 나를 유머 소재로 써먹었다. 내가 얼마나 지질하고 유치한지 아는 친구들은 힙 에피소드들을 상당히 재미 있어 했는데, 한 친구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생존형 힙스터'는 나름의 아이덴티티로서 힙하다.
사실 가게의 영속을 위해 힙을 찾는 것이지 너 스스로는 별로 힙해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지 않느냐, 오히려 힙한 가게를 운영하는 힙하지 않은 사장이라는 너의 개성도 나름대로 힙하다는 주장이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힙은 아니긴 하지만 360도 돌고 돌아 타고나길 특이한 개성에 도달한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기 때문에 나는 이 가설 역시 마음에 꼭 들었다.
그런 방식으로 따져보면 내가 진짜 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나의 둘째 동생이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고장 나기 직전의 갤럭시 S7을 5년 넘게 사용한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미용실에 가지도, 옷을 사지도 않는다. 그녀의 관심은 전공인 수학과 가족의 안위, 맛있는 음식 정도로 축약된다. 애플 사의 갖가지 최신 기기를 사용하고 유명한 전시회를 다니며 분별 없이 소비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 동생처럼 뚝심 있는 사람은 거의 본 일이 없다. 어쩌면 힙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힙하지 않은 사람이 힙한 세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힙은 우선적으로 희소성에 그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힙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힙의 본질은 결국 소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소신은 누가 시킨 것도,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도 아닌 본인 안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소신 따라 사는 사람은 애쓰거나 꾸밈이 없이 독특한 개성을 가진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도도의 소신은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진부해서 닳아 빠진 것 마냥, 하나도 힙하지 않지만 도도의 소신은 맛 보았을 때 그냥 '좋다'는 것 - 제품이 좋다는 것이다. 패셔너블한 것, 트렌디 한 것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음식을 판매하는 업에 종사하고 있고, 음식을 판매하는 업의 본질은 음식이다. 나는 인테리어나 브랜딩을 제하고도 나의 젤라토,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기를 원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마케터라도 품질이 엉망인 물건을 오랜 시간 사랑 받게 만들 수는 없다. 제 아무리 '힙하다고들 하는' 가게라도 음식이 맛없으면 정말 없어 보이는 경험을 여럿했다. 그런 곳은 결국은 외면 받게 되지 않을까. 결국 진짜 힙한 곳은 성공적인 품질경영을 달성한 곳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