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멜론 탑100이나 빌보드 어워즈 같은 것 말고. 사람들은 간혹 예술은 주관적인 것이고 예술 간의 우열을 따질 수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예술 간의 우위를 느낀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아마추어더라도 프로페셔널 화가에 비할 수 없고, 프로페셔널 화가의 그림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에 그림에 비하면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에는 우위가 있다.
그런 의문을 처음 가진 때는 당시 원더걸스의 'Tell me'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물론 'Tell me'를 들으면 들썩이게 되고, "어머나"를 외치는 소희는 굉장히 귀여웠지만 그렇다고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답을 정해놓고 그 근거를 골몰하던 어느 날 깨달았다. 100년 뒤에도 사람들이 'Tell me'를 들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 역시 장담할 수 없지만 아마도 100년 뒤의 사람들도 듣고 있을 것 같다. 100년 전의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었고 현대의 인간들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듣고 있다. 100년 후의 인간들이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있는 장면이 어렴풋하게 스쳐지는 순간 나는 100년 후의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을 느꼈다. 100년 전의 노래를 듣고 있는 지금의 우리와 또 100년 전에 차이코프스키가 발표한 노래를 듣는 과거 사람들과 모두. 심지어 우리는 더 예전의 노래인 바흐나 모차르트도 듣고 있다. 예술의 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시간인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200년을 살아남았다. 'Tell me'가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이상의 시간을 이겨낸다면 'Tell me'가 더 위대한 음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200년의 시간을 버틴 차이코프스키가 훨씬 위대하다.
시간의 흐름을 이겨낸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 것은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음악도, 미술도, 책도 오래된 것을 듣고, 보고, 읽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처럼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방황하는 인간도, 전락하는 인간도 아름답지만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통찰력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시 옳은 결정만 하고 뒤를 돌아봐도 “역시, 옳았군.”할 수 있는 사람. 에두아르 마네나 에밀 졸라와 같은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얼떨결이더라도 인상주의의 막을 열어젖혀서 시조가 되거나, 죽더라도 후대에 옳은 글을 남기고 옳은 사람으로 죽는 것이 나의 희망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PMP로 인기가요나 다운로드하여 보다가 문득 떠올린 생각인데 이 생각은 20년이란 시간을 먹고 자라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집념으로 변모했다. 지금 내 가치관은 시간이 지나도 과연 유효할까. 나는 어떤 방식을 선택해서 시간을 이길 수 있을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들 한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바로 시간을 버텨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미약하고 부족한 능력으로 힘차게 애써서 세상에 기억될 조그만 생채기 하나는 내고 싶어 졌다. 최소한 내가 기억할 수 있을만한 미래 안에서는 생존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항상 내 마음은 10년 뒤, 20년 뒤로 날아가 버린다. 빠르게 가맹점을 내주고 빠르게 유행에 편승하고 빠르게 엑싯하고. 뭐든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의 F&B 생태계에서 사람들은 내게 이런 걸 꿈꾸냐 종종 묻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젤라또를 팔고 아이였던 손님이 어른이 되어서도 도도를 먹는 그런 미래를 꿈꾼다. 내 브랜드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노력한 결과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골몰해서 선택한 수단에 가깝다.
나는 시간을 이겨내지 못할까 봐 두렵다. 수많은 경쟁자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우릴 잊으면 어떡하지? 각 매장의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땐 어떡하지? 다른 브랜드들이 팝업 할 때 우리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어떡하지? 새롭게 좋은 공간이 우리에게 제안을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이렇게 항시 미래를 살고 있어 괴롭다. 유행하는 브랜드를 보면 소위 잘 나가서, 혹은 돈을 잘 벌어서 부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시간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 도태되고 있는 중인가 하는 의심이 들어 불안해진다. 오래 아름답고 오래 온화한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빠르게 거대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뎠기 때문에 위대해져 버린 것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