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럴까?

: 누군가 엉덩이를 후려쳐줬으면 좋겠다.

by 호시탐탐

금요일 오후 5시, 아들과 엄마가 커피숍에 들어왔다. 꽉 찬 커피숍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배회하다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나는 가방을 놓았던 의자를 살짝 내어준다. 가벼운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떡 숙여 인사를 하고는 내 옆자리에 앉는다. 금요일 오후에 엄마와의 데이트를 즐기는 살가운 아들을 힐끔 본다.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

“괜찮겠어? 밤에 잠 안 올 텐데”

“괜찮아”


아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화장실에 간다. 그 사이 아들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지만 엄마는 계속 자리에 앉아있다. 엄마는 마치 커피숍이 처음인 사람처럼 어색하고 불편해 보인다.

“불렀는데 몰랐어?”

아들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커피와 케이크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배도 안 고픈데 이런 걸 왜 시켰어?”


엄마는 아들이 시킨 뽀송뽀송한 카스테라 케이크를 살짝 떠서 입에 넣어 본다. 케이크가 생각보다 맛있었는지 엄마의 눈이 커진다. 이내 한 덩어리를 크게 떠서 아들 입에 넣어 준다.

“이게 뭐야? 이거 맛있다~”

자기 입에 한입, 아들 입에 한입 부지런히 포크를 움직인다. 괜찮다는 아들의 입에 케이크를 계속 넣어주자 아들의 짜증이 살짝 더해졌다.

“배 안 고프다며!!”


버럭- 소리 지른 게 민망했는지 아들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엄마는 남은 한 조각을 아들 입에 넣어주고 싶지만 눈치가 보인다. 엄마가 케이크를 다 먹고서야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들은 곧 있을 결혼에 엄마가 무언가를 해주길 바란다.

엄마는 아들이 바라는 걸 다해줄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엄마는 정말 필요한 것들을 먼저 이야기하라고 한다.

아들은 정말 필요한 것만 이야기했다고 말한다.

그럴싸한 예식장,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결혼을 하고 싶은 아들

부를 사람이 없다고, 왜 꼭 그날 이어야 하냐고 말하는 엄마.

두 사람은 평행선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아, 진짜! 이래서 싸우는 거구나?”

아들은 엄마를 가르치는 듯 툭툭 말을 뱉어내며 '아, 진짜!'를 남발한다.

엄마는 수첩까지 꺼내 부지런히 아들이 뱉은 말들을 메모를 하지만 아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을 엄마는 알아듣지 못한다.

아들은 그것도 모르는 엄마가 한심하지만 한번 더 빠르게 설명해 본다.

엄마는 여전히 아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묻지 못한다.

“모르겠으면 하지 마”


아들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들이 예약하려고 했던 예식장이다.

아들의 목소리 톤이 바뀌고, 아들은 공손하게 예식장 직원과 통화한다.

엄마는 애먼 메모장만 쳐다보고 있다.

전화를 끊은 아들과 엄마는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본다.


아들은 지금 몇십 년을 키워준 쟤 엄마가 얼마나 상처 받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가까이 앉은 자리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아들의 엉덩이를 후려쳐 주고 싶었다.

'야, 이 자식아.. 엄마한테 말 좀 이쁘게 하면 무슨 큰일 나냐?'


“말 좀 이쁘게 해!”

사실 남동생에게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1년에 많으면 두 번 정도 아빠를 만나러 간다. 어릴 때는 아빠를 원망했지만 나이를 먹으면 미워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빠를 만나거나 아빠와 통화를 할 때면 끝이 좋지 않다.


어색하게 일어나는 모자를 보자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아부지'를 검색한다. 눈을 질끈 감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벨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다.

“밥은 먹었어?”

“뭔 일 있냐?”

“일은 무슨.. 그냥 해봤어”

“별일이네..”

“..............”

“나 죽기 전에 손주는 안아볼 수 있는 거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어”

늘 똑같은 레퍼토리다. 아빠는 할 말이 없으면 결혼과 손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인데도 나는 매번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 다정하진 않더라도 평범한 대화를 하고 싶지만 아빠와는 왜 그게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은 아빠가 어떤 기분일지, 아빠가 지금 얼마나 상처 받고 있을지 모른 척한다.




엄마와 아들이 집이 아닌 커피숍에 와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아마도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잘해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아들은 장소와 상관없이, 몇 분만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난 일부러 아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지 말라고!'


나의 낯선 시선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아들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장치가 되길 바라면서! 나도 잘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아니 나는 잘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우리는 왜 그럴까?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옆자리 앉은 나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면서 제 부모한테는 함부로 대하고 만다. 그들에게 자식으로 태어난 유세를 부리는 중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들도, 나도 그들이 받는 상처는 당연하다고 모른 척하지 않도록... 누군가 엉덩이를 후려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