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고 있는 거니?

영화 [국보]를 보고 나서

by 오 순

이 영화는

가부키 배우의 50년 인생을 그린 이야기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한 야쿠자 집안의 신년회.

술에 취한 야쿠자들과 게이샤들로 시끄럽고.

작고 어두운 방에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얼굴과 목에 하얗게

부키 화장을 하고 있고 있다.

신년회에 참석한

당대 최고의 가부키 배우는

이 아이의 온나카타 연기를 보게 되고

천부적 재능을 알아차린다.


가부키 공연이 끝나고,

잠깐의 평화로운 시간이 흐른 뒤

난데없이 한 패거리가 들이닥치고,

불행히도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그 후 어린아이 키쿠오는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던 수리부엉이 문신을

등에 하고 복수에 나섰지만 실패하고야 만다.


그 후 시간이 흘러

키쿠오는 신년회에서 만난 가부키 배우 집에서

본격적으로 가부키 배우로서 길러지게 된다.

그 남자의 아들 슌스케와 함께.


가부키 혈통을 물려받은 슌스케,

가부키 재능을 가진 키쿠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며 갈등하며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설정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충분히 예상이 다.

영화 국보는 서편제, 패왕별희와 같이

예술지상주의 담은 영화다.


왜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


내가 좋았던 점은 첫째,

관심조차 없었던, 마냥 무서웠던 가부키를

문화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중학교 때 본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 에 소개된 가부키는

기괴한 화장, 몸짓이 이상한 극이었다

가부키는 스쳐지나가는 문화였다.

그런데 <국보>를 보고 난 후,

가부키 배우들의 장인 정신과

스토리가 흥미로웠다.


둘째,

주인공들의 뻔한 갈등의 감정들이

대 놓고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의 감정들은

영화 속 가부키 극에 담겨 있었다.


새하얀 화장에 빨간 눈꼬리, 입술에서

발현되는 그들의 감정은 너무나 섬세했다.


그리고 45도로 젖혀 있는 몸,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인물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온나카다를 연기할 때는

목선과 어깨선이 고와야 하고

얼마나 몸이 뒤로 젖혀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키쿠오의 감정이 몸의 흐름을 타고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셋째,

키쿠오의 전부는 가부키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줬다는 점이다.

시대적 배경도

키쿠오와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구구절절한 상황도 생략되었다.


슌스케가 8년 만에 돌아와

키쿠오를 만나면서 자신의 아내,

과거 키쿠오의 연인을 만나 주길 바란다.

키쿠오는 호텔 로비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감독은 키쿠오의 모습만 보여줄 뿐,

굳이 그녀와의 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들은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데

생략, 키쿠오를 위해

감독은 생략하고 또 생략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내가 좋아했던 장면이 몇 장면 있다.


# 1. 키쿠오와 내가 함께 울었던 장면이다.

키쿠오는

돌아온 슌스케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부키 공연을 하는데

취객들에게 뭇매를 맞고

푸른 밤,

멍든 가슴을 술로 달래며

느리게 느리게 자신의 슬픔을 따라 춤을 춘다.


이때 키쿠오를 사랑해서

키쿠오 옆에서 함께 지내던 여자가 묻는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거니?"


키쿠오는 여자의 얼굴조차 보지 않는다.


나도 나에게 물어보았다.

"뭘 보고 있는 거니?"


키쿠오와 나는

아픈 춤을 함께, 잠깐. 추었다.


#. 2 슌스케가 죽기 전 공연 장면


슌스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당뇨로

다리에 괴사가 오고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키쿠오와 마지막 무대를 하게 된다.


슌스케가 온나카타 역을 맡고

남자역을 키쿠오가 연기를 한다.

두 사람은 가부키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 3. 마지막 무대에서

마지막 키쿠오 고별 무대다.


투명 우산을 쓴 키쿠오,

무대 위, 벚꽃이 흩날린다.

쓸쓸히 혼자 공연을 마친 후,

그는 무대에 서서 독백을 한다.


"아름답구나"

키쿠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경치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벚꽃의 흩날림인 것도 같고

첫눈인 듯하기도 하고

불빛들이 흔들리는 듯하기도 하는 그 경치.


그가 평생 보고 싶었던 경치는

오로지 가부키 공연 속 자신이지 않았을까?


국보 영화가 끝난 후

나도 키쿠오처럼

'아름답구나' 이렇게 읊조리며 극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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