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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썸머 Feb 28. 2024

입지 않는 옷을 비우지 못하는 건에 대하여

혹시나? 역시나!

예쁜 원피스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잡힌 셔링이 몸매를 보정해 주고 한층 더 우아하게 보이게 해주는 원피스였다. 각종 행사에 입으면 되겠다 싶어서 나름 큰돈을 주고 구매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치마보단 바지를 선호하게 되었고 아이를 케어하기에도 바지가 더 편했다. 그래서 각종 행사에는 정장 바지를 주로 입었고, 예뻤던 원피스는 옷장 안으로 안으로 점점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각종 옷을 비우는 와중에도 그 원피스만큼은 쉽게 비우지 못했다. 내가 샀던 옷들 중에서 가장 비싸기도 했고, 가장 예쁘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입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집에서나마 잠깐 입어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수년간 비우지 못했던 원피스였다.


그런 원피스를 새해가 되고 비우게 되었다. 옷장을 비울 때마다  원피스가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깝긴 했지만 드디어 비울 결심을  것이  시원했다. 비움이 익숙한 나도 애정이 담긴 물건을 비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애정은 애정으로만 남겨두고 물건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미니멀라이프다.


평생 옷장 속에서 쓰임을 기다린  점점 낡아져 가는 것보다  주인을 만나 많이 입혀서 낡아가는   원피스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미련 가득한 주인을 만나  한번 세상을   전부인 원피스에게 미안해서라도  주인을 찾아주어야 했다.


예쁜 원피스는 금방 판매되었다. 구매가격의 반값에 올렸어도 중고 의류치고는 비싼 금액이었지만 예쁜 옷이라 금방 팔렸나 보다. 만약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서 계속 판매금액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어쩌면 다시 옷장 속에 자리했을지도 모른다. 이 가격엔 팔 수 없어..라고.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금방 새 주인을 만난 원피스. 부디 세상 밖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년간 비우지 못하는 미련이 가득한 물건들은 역시나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살이 쪄서, 육아 중이라서, 입을 일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옷들이 참 많다. (가방과 신발도 마찬가지다) 지금 밖으로 꺼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영영 힘들다. 나중을 위해 지금 챙겨둬야 하는 건 건강과 돈뿐이다. 물건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쓰여야 한다. 과거에만 썼던 물건은 미래에도 없다. 여전히 집안 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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