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밥 돌밥의 굴레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침을 차리고 돌아서면 어느새 점심을 차려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의 활동량만큼이나 집안일은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쌓여만 간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와 빨래, 끊임없는 정돈... 이 모든 일을 폭풍처럼 해내고 나면, 잠시동안 '0'의 상태가 된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사라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깨끗한 '0'의 상태.
그리스 신화에서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형벌'이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과격하지만, 끝없이 쌓이는 집안일을 해내는 모습은 과연 시지프스의 일과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법하다.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도 잠시, 다시 어질러지는 일상의 반복. 이러한 반복 속에 느껴지는 허무함.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 삶의 본질이다.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휴식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휴식하는 끝없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도 떠나보지만 결국 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상이 과연, 우리를 지치게만 하는 걸까.
인생을 살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고민과 시련이 닥치게 된다. 그러한 예기치 못한 혼돈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건 ‘단단한 나의 일상’이다. 지겹게 느껴지는 반복된 일상은 사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든든한 방어선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된 일상은 나도 모르게 나를 좀 더 성장시켜준다. 처음엔 서툴렀던 요리도 반복하다 보면 분명 더 나아진다. 비움도 마찬가지다. 마음먹기가 어렵지, 한번 마음먹으면 어느새 익숙하게 ‘필요한 것’과 ‘비워내야 할 것’을 능숙하게 구분해내는 능력이 생긴다. 모두가 조금씩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이다. 살림의 숙련도가 곧 삶을 대하는 태도의 숙련도가 된다.
마흔이 되어도 아직 내 자신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한 줄로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계속 알아가는 이 여정을, 결코 지루하다고 포기할 순 없다. 지루함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내 삶을 더 단단하게 지탱한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씻어내고 다시 세우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운 굴레가 될지, 나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어선이 될지는 결국 내 일상을 대하는 내 태도에 달렸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그 진리. 나이 들어갈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내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그런 아이를 키워내며 나 역시 인간으로 조금씩 성장한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성장들.
오늘도 쌓인 설거지를 해치우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부자리를 정돈하며 내일 아침, 기꺼이 다시 마주할 '0'을 위해 오늘 성실히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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