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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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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간 김개똥 Jan 11. 2022

2년 차 직장인이라는 견딜 만한 지옥 속에서

단지 널 사랑해 그렇게 말했지


어린 시절, HOT '캔디'를 듣다 보면 늘 의아했다.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을 사실 오늘 아침에 그냥 생각나서 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 내가 문희준이고 차장님은 단지다.

아침에 생각난 '퇴사'이야기를 차장님께 어렵게 맘 정한 거라 신나게 거짓말을 해보려 한다.


이제야 이해해서 미안해요 문희준 오빠

"차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수십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상황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차장님의 모습을 보니 초조함은 더 깊어졌다.



한참 동안 말없이 엑셀을 드르럭거리던 차장님은, 그제야 눈길을 주며 말했다.               

"언제?"     

"한 달 뒤에 나가겠습니다"     

"회사는 구했어?"     


네에에에엥?? 이직요?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하루에 14시간씩 주 6일을 여기 묶여있는데 어떻게 이직을 합니까? 연차도 휴가도 못쓰게 했잖아요? 양심 있습니까?     

ㅡ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패기는 없었다.


"아뇨. 그냥 좀 쉬게요."

"그냥 쉰다고? 뭐 해 먹고살게?"     

그러게요? 


사실 그것도 고민 안 해봤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어디로 가서 뭘 하고 생각할 심적인 여유조차 없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지옥에서. 그다음을 생각할 수 없었기에 그다음이 없었다. 뇌가 그대로 멈춰버린 기분. 어딘가 밧줄에 목이 걸려있는데 숨은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혼내는 듯한 차장님의 얼굴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든... 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몇 살인데 널 받아줄 회사가 어디 있겠어?"        

       


에잉 내가 우리 팀에서 젤 어린데 어쩔티비!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꾹 참았다.

어떻게든 내 기분을 한 번 나쁘게 해 보려는, 말에 한껏 담긴 악의(惡意)에 자꾸 웃음이 났다.


테스 형이 사람이든 말이든 집이든 각 사물이 충분히 발전했을 때 상태를 사물의 본성이라 했는데,

대체 이 Shake it은 차장이 될 나이가 될 동안 처먹은 본성은 뭐란 말인가.



자고로 날 선 말에는 딴소리를 하는 게 최고라고 배웠다.

"아이 뭐... 뭐라도... 하겠죠?"

느긋한 대답에 한숨을 쉬는 차장님을 뒤로하고, 차장실을 나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얻어걸린 토익 점수와, 구라로 점철된 자소설을 들고 ‘대졸 공채’에 도전했다. 

원래부터 딱히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대-기-업이 가고 싶었을 뿐이다. 

난 항상 이런데 어쩜 그리 몰라요오


그래서 “왜 우리 회사에 오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딱히 진심을 담아 해 줄 답은 없었다.

나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그냥 대-기-업-이 가고 싶은데 자소설 닷컴에서 대기업이라길래 썼어요!"

라고 말할 순 없잖아.


.

.



뒤돌아 생각하면 참 그렇다. 나는 왜 그렇게 대기업이 가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대기업 정도는 가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다.

대학교 다닐 때 성적이 괜찮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컸고, 부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기대와 시기가 섞인 남들의 시선 속에서, 내 인생이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게 전부였다.


가오가 장래희망을 지배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대졸 공채'라는 지옥에 뛰어들었다.


인서울 중위권(남들은 하위권이라고 하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니) 4년제 대학교, 인문대 상경대 복수 전공, 4점 가까운 학점,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인턴 및 실무 경력, 뭐 결격사유까진 아닌 어학 점수. 



특별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벼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대학생활 내내 우등생으로 살며 풀 충전된 '나는 달라'라는 뽕이 나를 두둥실 띄운 상태였다.


뭐 돈 내는 것도 아닌데, 하고 던져본 이력서가 내 몇 년을 통째로 바꿨다.



조선시대 망나니가 일부러 잘 안 드는 칼을 써서 죄인을 괴롭혔다는데, 그게 얼마나 파렴치한 짓인지 깨닫게 됐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희망고문이다.


서류만 어떻게 넘으면 인·적성은 정말 웬만하면 패스했고, 실무면접은 100% 합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번 최종면접에 붙을 수 없었다. 지금에는 나를 안 뽑은 그들의 마음을 알겠지만, 그땐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10번이 넘는 '최종 탈락' 통보에,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다는 환상과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이상한 환상에 시달렸다. 삶이 모래 같았다. 쥐려고 하면 할수록 흘러 내려가버리는.



그렇게 수렁에 빠져 아등거리는 나에게, 희망의 밧줄을 내려 준 건 이 회사였다.

사내 분위기는 어떤지, 잡플래닛 평점은 어떤지 볼 새도 없었다. 취준생만 아니라면 뭘 해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는 이 현실만 아니라면. 사는 게 죄 같고 매일매일 밥 버러지처럼 느껴지는 현실만 아니라면 다 좋았다. 

야근을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주말 출근에 출근해도 지하철 앉아서 올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입사 후에도 정말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다. 출근해서 얼마나 애교스럽고 센스 있게 인사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주임님들의 재미없는 이야기에도 소개팅에 나온 것처럼 까르르 정말요? 하고 받아칠 수 있었다. 일도 잘하고, 애교 있고, 사람도 남기는 자랑스러운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애썼다. 정말 애썼는데, 어느샌가 목에 걸린 이 사원증이 내 목을 졸라 오고 있었다.


누군가 회사를 '견딜만한 지옥'이라고 칭했다.

나도 2년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면 목이 졸려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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