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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21. 2020

댄스맘의 길

춤을 추는 너에게

어제 오늘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읽었다.

88년도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법학과 졸업 판사재직

얼마전에 그는 자신의 앞에 '판사'라는 직함을 주었던 그 직업을 그만두었다.

그 후에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잘 모른다.

그는 판사 재직시절 몇 권의 책을 내었고 여러 매체에도 글을 실어 인플루언서로서도 자리매김을 했는데

판사를 그만둔 후에 내는 저서가 그 전처럼 현직 타이틀이 없어도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의 생각이 대한민국의 1%, 법조인, 쉽게 만나지지 않는 집단의 한 사람으로서는 읽히기 재미있었으나

현직 판사라는 직함이 없다면 그의 글은 매력을 반감할 수도 있다.

잘나가는 한 사람이 행하는 자기 집단을 향한 반성 회한 질타 비판은 새롭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가 혹시 전업 작가로서 길을 가며 앞으로도 비슷한 글을 쓴다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문유석 판사의 에세이를 읽으며 내 옆에서 줄곧 춤을 추는 너를 여러번 봤다.

아마도 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읽을 때 더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한국에 살지 않지만 나는 너를 한국사람처럼 교육시킨다 느낀다.

한국 사람처럼 교육한다는 뜻은 너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역사를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30년을 살다가 이민왔고 한국에서 사교육 시장에서 밥을 벌어 먹고 살다가 이민왔고 한국에서 주입했던 온갖 가치관을 옳다고 믿으며 살다가 이민와서 너를 낳았다.

그랬으니 나에게 너를 낳은 이 땅의 가치관이 쉽게 몸에 밸 리는 없을터.


나는 네가 수학을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수학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키고

영어도 잘했으면 좋겠어서 인근 초등학교 선생님을 수소문해 주말마다 과외를 시키고 있다.

남들한테는 집에서는 돌봐줄 수가 없으니까 선생님이라도 만나서 그 시간만이라도 하기위해 보내는거라고 말하지만 과외 선생이 내 마음 같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언쟁을 하고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NAPALN 기출문제도 풀게하고 ICAS 기출문제도 종종 보여준다.

이 곳에 있는 한국 아이들 대부분이 클래식 악기를 하나씩 하고 네 친구 **이는 바이올린을 기가막히게 잘하기에 너도 현악기를 하나 들였는데 '내'가 평소에 매우 좋아하는 첼로로 선택했다. 너는 천성이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잘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고집도 세지 않아서 첼로 연주도 곧잘 하더라.

너는 댄스를 가장 좋아하고, 나 역시 너의 취향을 존중하므로 이 와중에 댄스학원을 일주일에 나흘을 다닌다. 발레, 엘리트 발레, 재즈댄스, 리리컬, 아크로바틱, 컴피티션TROUPE, 스트레칭까지 너의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게 바로 이 댄스다.

세살 때부터 놀러다니는 마음으로 시작해 지금 여덟살이 되었으니 오래했다.


수학 숙제 영어 숙제 하고 학교 온라인 강의 듣고 피아노 뚱땅거리고 첼로 슥 한번 지나가면, 나머지 모든 시간에 너는 춤을 춘다. 장난감 한번 가지고 놀새 없이 오로지 춤만 춘다. 너의 춤을 보면 네가 현대무용을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다. 너는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자유롭다. 몸의 유연함이 날이 갈수록 좋아보인다.

저래서 살이 찌지 않나보다 생각할만큼 오랜 시간 춤을 춘다. 어떤 날은 동화 빨간구두가 생각나서 섬뜩하기도 하다. 어느 발레리나가 신었다던 토슈즈를 선물 받고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턴보드 위에서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스핀을 하기도 한다. 너는 그래서 많이 늘었다. 내가 돈을 들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늘었음이 내 눈에 보인다.

그래도 나는 네가 댄스를 해서 먹고 살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고 내 주위에 간 사람이 없는 길이라서 내가 모르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댄스는 어렸을 때, 여자 아이라면 한번즘은 예쁜 옷입고 무대에 서보는게 추억이니까 시키는거라 늘 생각해왔다. 댄스는 해두면 나중에 나같은 만성 허리통증은 안생기겠지 그런 심정으로 시키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댄스로는 고등학교 입시, 이 곳에서 장학금을 받고 명문사립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입시에 성공할 확률이 없다.

나는 네가 공부를 잘 했으면 한다. 작년에 학년 탑10에 들어서 엘리트아카데미 트로피를 받았을 때가 엊그제 댄스 컴피티션에 나가서 4등을 했을 때 보다 훨씬 기뻤다. 내 솔직한 마음이 그렇다.

문유석 판사의 글에서 요즘 강남엄마들의 입시 추세도 그렇다고 보았다. 요즘 입시는 자기가 개천에서 용날 때와는 다르게 공부만 잘해선 안되는 입시로 가고 있다고 들었다. 논술, 음악, 외국어, 체육, 봉사활동(연구활동) 등 전인격적 교육의 완성판을 키워내고 그들이 대학에 간다고 한다. 강남의 엄마들은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어디에 쓰냐며 두루두루 잘하는 내 새끼를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그 전인격적 교육은 중산층 이상 혹은 상류층만 실현 가능하기에 부의 세습, 학력의 세습을 불러온다는데 핵심이 있다. 소득이 낮은 가정은 아이에게 현악기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학과 과목의 과외를 시킬 수 없다. 아이를 대학 연구소에 보내 체험하게 할 루트를 알 수 없고 승마나 조정같은 운동은 인생에 눈 앞에서 본 적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인격적 교육은 노예제를 바탕을 이루어진 사회에서 실현되던 교육이었다. 노예제를 전제한 후에 사회의 교양인 혹은 두루두루 잘하는 엘리트로서의 양식을 내 자식에게 이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명문대학의 입시는 성적 우수자를 적은 Portion으로 두고 그 외에 온갖 종류의 예체능 특기자를 뽑는데 그 이유는 머리 좋아서 몰려오는 유대인을 제외시키고 상류층 백인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이 나라의 고등학교 입시에 비슷한 모양새가 있다.

일년에 삼만불에 가까운 돈을 내야하는 명문 고등학교에 음악이나 성적 우수자를 뽑는 장학생 전형이 있다. 그 장학생들은 대부분 아시안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백인 아이들은 성적 우수자로 뽑힌 장학생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준 돈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이민자들이 삼만불 되는 돈을 지불하여 명문 고등학교에 보내기는 어려워 기를 쓰고 입시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해서 100%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는 뛰어난 아이들도 있는데 나같은 한국 엄마들은 다들 그 아이를 부러워한다.

또 어떤 학교는 졸업생의 자녀들을 우선으로 뽑는 고등학교도 있다. 우리 엄마가 나왔고 할머니가 나왔다는 우선순위를 다 채우고 가장 마지막 남는 자리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몇명 채운다. 그래서 그 학교는 돈을 주고 가고 싶어도 좀처럼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백호주의의 산물이 남아있는 형국이다.

나는 한국에서 강남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너희 외할머니가 교육열이 높아 나를 못살게 굴지도 않았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의 벽을 넘기가 어려웠고 그리하여 이민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가 이 나라에서 그 벽을 넘길 바랬다.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해 쳐다도 못봤지만 너는 하길 바랬고 그 벽을 넘기가 한국에서보다 여기서 넘기가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그 벽을 넘는다는 것은 너의 엄마가 한국에서 수많은 노예 중에 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였고 너는 수많은 노예를 밑에 두고 리더로서 삶을 살기를 인정해서 그랬다.


자기개발의 신화를 나도 당연하게 옳다고 믿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짜는 스케줄에 네가 순응할런지 모르겠다.

공부는 학교 공부만 따라갈테니 춤추는데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내가 '그러마' 하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네가 대학은 안 가고 댄스학원에 취직해서 너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좋아라 한다면

'That's great!'

이렇게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해에 의대는 천 명이 들어가지만 프리마돈나는 단 한 명인 그 길에서 네가 성공할 것 같지 않고

성공하지 않으면 뭐하러 하냐는 결과론적 사고방식이 지긋지긋하면서도 계산이 그렇게 된다.


네가 즐겨 보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댄스맘을 보면 그 길도 쉬운 길이 아니다.

네가 춤만 잘춘다고 해서, 내가 너의 댄스학원비만 꼬박꼬박 납부한다고 해서 네가 댄서로서 성공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이상의 부모로서의 서포트가 필요할 것이라는 암시를 이미 받았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그림이 그려지는 길도 가기가 어려운 판에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는 길을 가려고 하면 얼마나 깜깜하겠냐.

이사도라 던컨 같은 춤을 추는 너를 보며 나는 댄스맘으로서 마음의 준비를 슬슬하고 있지만

수학 과외도 그만두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도 내가 여전히 댄스맘일런지 알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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