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나 Jun 03. 2020

슬플 때 엄마가 보고싶다면

잊지마, 엄마는 힘이 셀 것이다.

오늘은 내 엄마가 무척 보고싶은 날이다.

전화를 해서,

펑펑 울었으면 좋을 그런 날이다.

가슴이 자꾸 차오르는데 쏟을 곳이 어디에도 없으면 결국 엄마 생각이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사이가 좋아지게 된다고 하던데

나는 너를 낳고도 내 엄마와 화해하지 않았었다.

콧대가 높았지.

나는 너를 낳은 일이 전쟁을 치른 것 같다 말했으면서도 사실은 무너지지 않았었다.

더 잘 살게 될 것이라 믿었고 그 삶의 방향은 엄마의 방향과는 다를 것이라는 오만함이 있었어.

나를 낳고 키우느라 소진시킨 내 엄마의 젊음을 하찮게 여겼다.

그것도 아주 쉽게.

내가 엄마를 보고싶어하고

엄마 앞에서 나약한 인간으로서 무릎을 꿇게 된건 네 아빠와 내가 하는 사업이 만만치 않아 하루하루가 힘에 부치게 되었을 때야. 아마 한 일 년 전이지.

살아내기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작아졌고, 그렇게 한없이 힘없는 아이가 되고보니 돌아갈 곳이 엄마 밖에 없더라. 내 엄마는 이미 환갑이 넘어 더이상 중력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늙음에 백기를 들어가는 중이었는데도 나는 내 엄마가 여전히 힘이 세고 세파에 꿈쩍않는 철인이라 생각했어.

나는 내 엄마의 눈물을 단한번도 본 적 없다.

엄마가 감기에 걸려 사흘이상 앓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엄마가 자기의 몽상으로 나를 소홀히 하는 것을 느낀 적도 없어.

엄마는 대체 어떻게 슬픔을 숨겼을까.


내가 울면 네가 슬퍼하고 네 아빠가 아파할 것이기에 난 이 집에서 울 수 없다.

이 집에서 나는 가장 강한 사람이지만 이 집을 가장 갑갑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내 엄마도 같은 이유로 자신의 슬픔을 철저히 숨기고 살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본인이 흔들리면 가족이 통째로 흔들리게 될텐데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너머의 것이었을거야.

자신의 의무를 기만하는 행위라 여겼을테고 자신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은 원하지 않았을테지

엄마가 삼킨 슬픔은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었을까.


일년 전 내 엄마에게 속을 내보인 후에 그것을 주워담느라 시간이 오래걸렸다. 나는 너와 네 아빠의 마음도 헤아려야하지만 내 엄마의 일상도 보호했어야 했는데 쉽게 속을 내보이고 나서 많이 후회했어. 그래서 드러낸 속을 다시 주워담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만든데 시간이 걸리더라. 내가 괜찮아져야 엄마가 안심할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바빴어. 나 때문에 내 엄마가 이어붙이고 있는 일상이 걱정과 한숨으로 점쳐지지 않아야 하니까.

그러나 너를 낳고 오만했던 그 때와는 물론 달랐어. 나는 엄마에게 보고싶다고 메세지하고 엄마에게 사소한 말을 건네도 그 안에 함축된 눈물을 엄마가 알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가장 나약함을 엄마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엄마 잘자' '엄마 밥은 먹었어?' 같은 사소한 대화를 뜨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딸아,

만일 훗날에 내가 보고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세상 가장 작고 어린 존재가 되어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면

마음껏 울다 내게 오렴.

나는 너에게 가장 강한 사람이 되어 자리를 지킬 것이고 늙어도 늙어도 늙지 않는 정신으로 버틸 것이다.

내 엄마가 나에게 가장 연약하고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남아주었듯이.

내가 많은 말을 할 수 없더라도 너의 사소한 인사를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줄거야.

내 엄마가 그러하듯 말이야.


오늘 내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밤길을 상상하면

좁은 골목을 돌아설 그 당찬 할머니의 걸음을 생각하면

나는 울다가도 아주 쉽게 괜찮아진다.

오늘처럼 엉엉 울고 싶은 날이라도

아주 쉽게 울고 또 괜찮아질 수 있다.


훗날 나로인해 네가 그러할 수 있다면 내가 내 엄마에게 진 빚을 갚게 되는 것일지도... ...






매거진의 이전글 나보다 나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