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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Jun 25. 2020

오직 두 사람

BFF- Best Friends Forever

고구마를 먹다가 문득 옆에 앉아있는 너를 봤는데 솜털이 가지런한 턱과 초저녁 달같은 아랫입술과 무심하게 내려온 앞머리가 감격적이어서 그만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그 마음은 때때로 밀려오는 반가움이지만 아무도 모를 마음이다. 심지어 너의 아빠조차도... ...

나는 남편이 있고 그는 너의 아빠고, 또 그는 매일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고 생활비도 가져다주고 너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듬직한 사람이지만.

지난 팔 년, 너와 나 단 둘만 지구에 남은 것 같은 시간이 있었어.

나의 남편이자 너의 아빠인 그도 분명 지구에, 그것도 우리 가까이 있었는데 기억 속의 그 땐 왜 너와 나 단 둘뿐일까.


너를 배에 품고 7개월을 지날무렵 한국에 들어갔었다.

삼년만의 한국행이라 교보문고에 가는 일이 가장 고대했던 것 같아.

제일 그리웠던게 책사고 책보고 서점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거든

교보문고 시집 서가였나, 인문서적 코너였나. 큰 책장 앞에 서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올려다보고 있었어. 밥을 안먹어도 될 것 같고, 이 책 다 못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고, 또 이렇게 구경만하다가 집에가도 되겠다 싶은 벅찬 마음을 누르고 있었는데 그 때 그만 그자리에 주저 앉을뻔 했다. 왜냐면 네가 뱃속에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기 때문이야.

그 발길질, 태동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기쁨을 알아주는 가장 힘센 공감이었으니까. 이전에도 후에도 나는 그렇게 격한 공감을 타인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어. 아무리 설명해도 되지 않는 순간들에 아무도 없이 오직 너와 나 뿐인.


네가 네 살에 아빠 테니스 대회를 따라 시드니에 갔을 때는 기억 나니? 아빠가 테니스 대회 마치고 사람들이랑 회식을 해야 해서 너랑 내가 기차를 타고 호텔로 먼저 돌아가야 했는데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중간에 내려서 걸어갔던거. 시드니 CBD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네 살 된 네 손을 잡고 그 밤중에 걸었잖아. 펍이 몰려있던 스트릿을 지나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던 파크를 건너 재개발 직전의 센트럴 스테이션을 통과해서 두시간 가량을 걸었다. 잡고 있던 손에서 어찌나 땀이 나던지, 잡혀 있던 네 손은 어찌나 작던지 땀에 밀려 작은 네 손을 자꾸만 놓칠 것만 같아 나는 긴장했었다. 시드니는 겨울이었거든 분명 코가 시려웠는데 등줄기에서 흐르는 흥건한 땀은 너와 내가 살기위해 빚은 결기 같은 것이었어. 다리가 아프다 칭얼대지도 않고, 무섭다 울지도 않고 그저 엄마 손을 꼭잡고 한마디 불평없이 끝까지 걸어온 너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테지.


너는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네가 두살이 되던 해부터 여섯살이 될 때까지 엄마는 투병중이었다.

그 중 이년은 일주일에 한번씩 맞아야 하는 항암제 투여를 위해 심장 대정맥 혈관 라인을 따서 바깥으로 꺼내놓고 살기도 했었다. 너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은 그저 엄마의 팔이 아프다는 정도였어. 겨드랑이 사이로 정맥라인이 빠져나와 있는걸 궁금해하는 너에게 팔이 아파서 그렇다는 변명은 참으로 가난한 말이었지만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 이후로 너와 같이 샤워하는 일을 꺼렸던건 옷으로 가리지 못한 팔에서 네가 눈을 떼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자꾸만 자꾸만 해댔기 때문이야.

"엄마 팔이 아파? 팔이 아파서 주사를 맞아야해?"

나의 투병중에도 너는 키가 자랐고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랐다. 나의 세포가 질주하듯 죽어가는 시간에도 너의 세포는 무궁무진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손발톱을 다듬어주어야 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 저 멀리서 힘차게 달려오는 너의 건강한 성장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었어. 내 무릎에 앉혀 네 손톱을 깎아주다가 이제는 키가 제법 커서 더이상 무릎에 앉힐 수 없게 된 지금, 이만큼 자란 너를 그저 기적같은 일이라 믿는다.


사년 투병 중에 내가 배운 것은

누구나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생의 연약함과

그러므로 태연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뻔뻔함이었다.

때때로 그 역설 사이에서 무너질 때, 오직 너와 내가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너를 기를 것이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마음 그래서 더욱 뻔뻔하게 사랑하리라는 마음.


오직 너와 나.



P.S 한글을 배우는 너를 환영한다. 갈 길이 멀지만 오래 가는 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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