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우동 여행 (4)

by Doggy Poo

지난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가 날이 밝아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 가는 날이다. 나오시마가 다카마쓰 근처에 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몇 달 전 친구가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다가 나오시마에 가자고 하는데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책에서 보았던 나오시마를 가볼 수 있다니 등골이 짜릿한 느낌이었다. 내 평생에 그곳을 가볼 수 있을 것이라 한 번도 기대를 한 적이 없었다. 그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인 커다란 점박이 호박과 누구나 좋아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있는 곳이 나오시마이다.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서 다카마쓰항으로 가는 길에 일본의 김밥천국이라고 불리는 <스키야>에서 일본 가정식 아침 식사를 먹었다. 미끈미끈해 적응이 잘 안 되는 낫토 정식을 입에 밀어 넣고 피곤한 몸을 나오시마로 향하는 배에 실었다.

나오시마항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 보였다. 까만 점으로 뒤덮인 거대한 붉은색 호박이 반쯤 부두에 묻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속이 텅 비어 있었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줄지어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눈으로 보았으면 그만이다. 예전에 이 작품의 작은 진품을 가지고 싶어 잠시 가격을 알아보다가 너무 비싸서 서둘러 마음을 접은 적이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을 점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 세련되고 까만 점들 속에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많은 점들을 그리면서 해소하고 싶은 남 모를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오시마항에서 전기자전거를 빌려 <지추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기자전거를 빌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나오시마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더 들뜨게 하였다. 오르막 길도 힘 들이지 않고 넘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걷기는 부담스럽고 버스를 타기는 아쉬웠는데 전기자전거는 안성맞춤이었다.

이내 도착한 <지추 미술관>은 우리말로 읽으면 '지중 미술관'이다. 땅 속에 묻혀 있다는 말이다. 안도 다다오는 섬에서 이 건물이 너무 튀어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땅 속에 묻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몇 개의 성큰을 두어 개방감을 허용하면서도 밖에서는 건물의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술관 입구에는 새로운 세계의 경계를 짓는 것처럼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하나 서있었는데,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올 수 도 없고 둘 곳도 없지만 그 거대한 벽이 하나 있으면 왠지 마음도 든든할 것 같았다. 안도 다다오의 마스코트인 거대하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만져보면서 왠지 그와 인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인상주의 거장인 모네의 진품을 처음으로 보았다. 새하얀 모네의 방에는 거대한 수련이 방의 세면을 채우고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의 양에 따라 방의 명암이 변하는데 짧은 시간 사이에 방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모네의 작품은 훌륭했다. 그러나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다.

작품 입구부터 긴 줄이 서있었다. 좁은 통로의 줄 끝에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어 신을 실내화로 같아 신고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8명 정도가 같이 들어갔는데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작품 앞에 한 줄로 길게 섰다. 앞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위로 빨간 직사각형이 보였는데 처음에는 뒤에서 프로젝터로 쏘는 것인 줄 알았다. 직원이 계단을 하나씩 올라 빨간 직사각형으로 다가가라고 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이런 작품이 있나......' 하는 실망감에 시큰둥하였다. 그러나 빨간 직사각형으로 점점 다가가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빨간빛은 프로젝터로 벽에 비추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빛은 직사각형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각적으로 관객을 완벽히 속인 것이다. 안 쪽의 빨간 공간에도 깊이 알 수 없는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직원은 표시된 곳을 넘어서는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밑으로 떨어지는 절벽 같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아무래도 벽과 바닥이 만나면 음영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그렇게 설계한 것 같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현대에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실재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 이렇게 완벽히 속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이고 진리인지 어떻게 분별한 것인가? 이성에 의존하는 철학과 감각에 의존하는 과학은 그 도구로 합당한가? 인간은 여전히 고뇌한다.

<지추 미술관>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내달려 <밸리 갤러리>와 <이우환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우환 선생님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을 본 적이 있어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야외에 설치된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시마의 능선을 넘어 <베넷세 하우스>의 동쪽 문으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 따뜻한 햇빛,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나오시마를 달리니 기분이 참 좋았다. 도착하니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작은 방파제 끝에 놓여 있었다. 마치 처음과 마지막을 표시하는 부호처럼 그녀의 호박은 나오시마의 상징이 되었다. <베넷세 하우스 미술관>에서 유명한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고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에서 따뜻한 말차도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현대 미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류는 여전히 자아와 세상에 대해 고뇌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나오시마는 하루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나흘은 머물러야 될 곳 같았다. 뱃시간이 점점 다가와 돌아오는 길에 작은 마을에 들러 <안도 다다오 박물관>을 둘러보고 섬마을 달려 나오시마항으로 돌아왔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서 보낸 하루는 잊지 못할 것이다.

다카마쓰항에 돌아오니 이미 해가 져있었다. 항구 근처에 있는 우동집 <혼카쿠테우치 모리야>에서 얼굴 만한 채소튀김이 올라가 있는 따뜻한 우동을 맛보았다. 차가운 우동보다는 따뜻한 우동의 면발이 부드러워서 더 좋았다. 혀에 착착 감기는 면발의 탄력과 감칠맛 나는 쯔유의 조화가 좋았다. 튀김은 너무 커서 다 먹기 부담스러웠다. 우동 한 그릇으로 저녁을 끝내기는 아쉬움이 남아 호네츠키도리라고 하는 닭구이를 먹어보기로 하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요리도리 미도리>라는 가게에 들러 영계와 노계를 하나씩 시켰다. 영계는 부드러워서 먹기 좋았지만 고기 맛이 더 좋은 것은 노계였다. 다만 노계는 너무너무 질겨서 씹기도 자르기도 어려웠다. 다 먹고 가게를 나와서 호텔로 가기 위해 제법 걸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불렀다. 친구가 닭구이 가게에 무얼 두고 왔는지 종업원이 여기까지 우리를 찾아서 가져다준 것이다. 일본인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우리나라였으면 '찾으러 오겠지' 하고 말았을 텐데 이런 태도와 친절함은 배워야 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어김없이 온천을 하고 야식 라멘을 먹었다. 감사한 하루를 마치고 깊은 잠에 들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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