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우동 여행 (3)

by Doggy Poo

둘째 날 아침, 우리는 기상 30분 안에 출발이 가능하다. 중년 남자 둘이기 때문이다. 8시쯤 도착한 <미나미 커피>는 이미 만석이었다. 다카마쓰 아케이드 안에 있는 이 고풍스러운 카페는 아침 7시부터 문을 연다. 8시에 이미 만석이라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이곳에 오는 지역 주민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저마다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잠시 후 카운터석을 안내받아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는 아침 세트가 있는데 커피를 시키면 제법 두꺼운 토스트 한쪽을 같이 주었다. 나는 간단히 아이스커피를, 친구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가게 안 쪽에는 로스팅룸이 따로 있었고 백발의 머리를 가지런히 넘기신 어르신이 오래된 로스팅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아마 사장님이신 것 같았다. 이 분위기와 향긋한 커피, 따뜻한 토스트는 이 분이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느껴졌다. 카푸치노에 같이 나오는 시나몬 스틱과 따뜻하게 데워서 나온 물수건(요즘 우리나라에 흔한 물티슈가 아니라 예전에 많이 보이던 둘둘 말려 나오는 천으로 된 하얀 물수건이다.), 저렴한 커피 가격만 보아도 이곳은 프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고 사랑을 받을 만한 곳이다. 토스트는 기성품을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갓 구운 토스트, 그것도 테두리를 잘라서 작은 대나무 채반에 담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작은 감동이 느껴졌다. 이런 곳이 집 근처에 있다면 나도 매일 아침 이곳을 들를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작은 카페에서 나는 영감과 감동을 느꼈다.

기분 좋은 모닝커피를 마시고 다카마쓰의 명소 리쓰린 공원으로 향했다. 리쓰린 공원은 잘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이다. 날씨는 청명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정돈된 정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좋았다. 공원이 아름다워서 인지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웨딩 촬영을 하는 선남선녀 몇 커플이 보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서 인생의 기쁨을 맛보기를 마음 한 편으로 빌어 주었다. 연못과 어우러진 길을 지나 말차와 과자를 파는 <키쿠게츠테이>라는 찻집에 도착했다. 잠깐의 웨이팅 후에 신을 벗고 대청마루 같은 다다미방에 올라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곧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종업원이 따뜻한 말차과 과자를 가져다주었다. 맛있게 먹으라며 이마를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절을 하고 종업원은 곧 물러났다. 쌉싸름한 말차와 달콤한 과자는 입을 즐겁게 하였고 사방으로 뚫린 커다란 문으로 들어오는 청광한 풍경은 이 시간을 더욱 값지게 하였다. 마당에 깔린 자갈을 빗으로 빗은 듯이 가느다란 고랑과 이랑으로 정돈해 둔 모습이 작은 것에도 정갈한 일본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전 내내 리쓰린 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 상점에 들렀다. 일본식 식혜를 사보았는데 삭힌 느낌이 우리의 식혜보다 더 강하였다. 친구에게 조금 상한 식혜 같은 맛이 난다고 하며 먹어보라고 권하니 그렇게 말하면서 권하는 것이 어디 있냐며 웃었다. 상한 식혜든 썩은 식혜든 친구와 함께 라면 호탕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으러 <우동 보>라는 우동집에 들렀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 맛본 우동집 중에 가장 나의 입맛에 잘 맞았다. 다른 우동집들보다는 면이 얇아서 우리의 칼국수보다 조금 두꺼운 느낌이었다. 이곳의 냉우동은 정말 일품이다. 마침내 면발이 입 속에서 춤을 추는 듯한 식감을 느껴 보았다. 따뜻한 국물 우동과 가마버터 우동도 맛이 좋았지만 냉우동의 그 식감은 누구에게나 알려주고 싶은 정도였다. 한번 더 먹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후에는 코토덴이라는 작은 열차를 타고 다카마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야시마산 꼭대기로 향했다. 오래되어 보이는 열차를 타고 한적한 일본 마을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산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전망대에 이르니 다카마쓰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 곳곳에 이러한 도시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진 실력이 뛰어난 친구는 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바다와 다카마쓰,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붉은 석양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인생에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맛있는 음식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 그리고 이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해가 다 떨어질 무렵이 되어 야시마산을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가와라마치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복을 가끔 볼 수 있지만 모자까지 갖추어서 쓰고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제복에는 힘이 있다. 일하는 사람도 제복을 입으면 더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보는 사람도 더 신뢰가 가는 것 같다. 인간은 그러한 형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점점 제복이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다.

저녁 식사를 위해 도착한 초밥집 <스시 도코로 이토한>은 6개 정도의 카운터석만 있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친구가 한국에서 이 초밥집을 무려 전화로 예약을 했다는데, 외국에 전화를 걸어 초밥집에 예약을 하다니 상당히 놀라웠다. 제법 젊어 보이는 주인장과 부인으로 보이는 종업원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나는 그동안 공부한 일본어로 우물쭈물 말해 보았지만 주인장은 상당한 영어와 한국어로 대답을 해줬다. 그때 나는 일본 사람들은 일본어보다는 영어로 말을 걸어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일본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동안 조금씩 일본어 공부를 했었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이 하나씩 내주는 초밥은 감칠맛이 훌륭했다. 초밥이 차갑지 않고 어느 정도 온기가 있어서 새로웠다. 초밥을 빚는 주인장의 정성과 손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 여행의 목적은 식도락이기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초밥집을 나와 지척에 있는 교자집 <교자야>로 향했다. 교자집이 어두컴컴한 골목에 있어서 처음에는 잘 알아보기 어려웠다. 흐릿하게 보이는 가게의 환풍구에 거무스름하게 붙어있는 기름때 사이로 교자 굽는 냄새에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작은 카운터석에 앉아 교자와 콜라 2병을 주문했다. 눈앞에서 교자를 빚고 있는 주인장은 프라이팬에 갓 빚은 교자를 구워 주었다. 교자 속은 평범했지만 피는 입 속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와사삭 부서지는 교자들을 순식 간에 해치우고 우리는 선물을 사기 위해 돈키호테로 향했다. 수화물 최대 무게에 맞추어 곤약 젤리와 선물들을 사고 호텔로 돌아왔다. 온천이 있는 호텔로 숙소를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피곤한 몸을 따뜻한 온천물에 담그면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야식으로 주는 라멘은 안 먹으면 후회할 것 같아 놓칠 수 없었다. 도대체 오늘 하루 얼마나 먹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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