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긴장이 되었는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 20분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한 시간 전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짐은 간단했다. 여분의 옷 한 벌과 3일 치의 양말과 속옷뿐이었다. 캐리어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남자들의 여행이란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아내가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기로 하였다. 아이들도 아빠를 배웅하고 싶었는지 그 새벽 시간에 일어나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차를 타고 나왔다. 황송한 환송을 받으며 공항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새벽 시간에도 공항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의 만석이 된 공항버스는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피곤함에 비몽사몽이었다.
6시가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이미 북적였다. 이럴 때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다 허풍인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해외여행은 흔한 일이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이 설레어서 인지 사람들도 설레어 보였다. 같이 가는 친구는 지방에서 어제 올라와 공항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나를 위해 멀리서 올라와준 친구가 고마웠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기쁨과 해방감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수화물도 셀프로 부치고 자동출국 심사를 한 덕분에 순식 간에 출국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간단히 <모스버거>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일본에 가는데 일본 브랜드인 <모스버거>를 먹었다는 것이 뭔가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타카마쓰로 가는 사람들은 많았다.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친구가 머리를 쓴다고 한 자리를 띄우고 좌석 예약을 했었는데 그 자리에도 타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스미마셍'으로 조아리며 다시 자리를 붙여 앉았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일본 땅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카마쓰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 줄의 거의 끝에 서서 입국장을 나오니 우리의 수화물은 벨트에서 내려져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친절도 해라. 우리는 편하게 수화물을 챙겨서 공항버스에 올라 다카마쓰 시내의 호텔에 도착했다.
여느 일본의 도시가 그렇듯이 다카마쓰는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된 도시였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첫 번째 우동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우동집은 <수타우동 후게츠>였다. 대부분의 우동집은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15분 정도에 있는 우동집에 도착하니 이미 골목을 따라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열명 정도 서있는 사람들 중에 한국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본 한 커플은 여행 내내 마주치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줄 끝에 가서 서있자 앞에 있던 일본 분이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판은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어 번역기를 돌려야 했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금세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리는 10석이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좁은 카운터석에 앉아 닭튀김이 곁들여진 냉우동 2개를 주문했다. 가게는 작지만 종업원들은 절도가 있어 보였다. 마침내 대면한 우동에 나는 긴장했다. 그토록 기다리면 사누끼 우동을 드디어 맛보는 것이다. 긴장되면서 마음이 다급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까만 육수를 붓고 두껍고 하얀 면발을 집어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에?'
면발은 미끌거렸지만 조금 딱딱했다. 부드러울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 비껴갔다. 면보다는 떡에 가까운 식감이었다. 면발이 입 속에서 춤을 출 줄 알았는데 턱에 약간 부담이 될 정도로 딱딱한 느낌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후추향이 살짝 올라오는 닭튀김은 바삭하고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서 맛있었다. '우동이 다 이러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수타우동 후게츠>에서 첫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옛 다카마쓰 성터 유적지로 향했다.
일본 성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낀 것은 2년 전이다. 가족 여행으로 갔던 구마모토성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지진 때문에 일부 무너져 있었지만 규모가 크고 위용이 있어 보였다. 천수를 누리라는 뜻으로 지었다는 천수각은 일본의 옛 문화가 느껴져서 좋았다. 다만 저 높은 건물을 지은 사람들은 모두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숙연했었다. 건물은 남고 사람은 사라진다. 아무리 유명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도 모두 안개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1590년에 지어진 타카마쓰성은 바다와 바로 접해 있어 해자에도 해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실제로 해자 속에 바다 물고기로 보이는 것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천수각에서는 북쪽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84년에 노후화를 이유로 해체되었고 지금은 천수각의 터만 처량하게 남아 있었다.
다카마쓰성터를 둘러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위해 <피코피코 정육점>으로 향했다. 이 식당은 일본식 불고기인 야끼니꾸 가게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식도락이다. 우리의 목적은 완벽히 일치했다. 그동안 먹어보고 싶었던 일본 음식들을 모조리 먹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우설이다. 우설을 구워 먹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본토에서 먹는 우설이 어떤 맛일지 상당히 궁금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에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는 가스 직화 화로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유명한 미야자키 소고기 모둠 세트에 우설을 추가하고 호텔에서 준 쿠폰으로 생맥주 2잔을 주문했다. 드디어 맛본 우설은 처음 먹어 보는 식감이었다. 누군가 소와 키스하는 느낌이라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치 그런 식감이었다. 쫄깃한 식감은 질긴 것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쫄깃쫄깃한 고기와 감칠맛이 특이했다. 이렇게 우설을 먹어보았다는 경험을 하나 더 추가했다. 모둠 세트의 고기들도 모두 맛있었다. 오랜 친구와 일본에서 우설과 함께 나마미루 한 잔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고 감사했다. 우리의 식사는 길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그랬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했다. 또 다른 것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잠시 시내의 아케이드를 둘러보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꼭대기에 있는 온천은 규모는 작지만 사우나와 노천탕도 갖추고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매일 밤 온천은 피로를 푸는데 제격이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노천탕에 앉아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온천을 마치고 나와 무료로 주는 아이스크림도 양껏 먹었다. 그리고 호텔에서 무료로 주는 야식 라멘을 먹기 위해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무료로 주는 것이어서 기대를 별로 안 했는데 맛이 훌륭했다. 담백한 국물과 꼬들한 면발에 양도 많지 않아서 야식으로 적당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밤 이 라멘을 즐겼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잠에 곯아떨어졌다. 친구 말로는 코를 제법 골았다고 한다. 나는 예민해서 내가 코를 골면 그 소리에 깨는 사람인데 전혀 모르고 숙면에 빠졌던 것이다. 친구에게 적잖이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