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부스

by 도고

뛰어야 했다
벼룩 같은 말들을 움켜쥐고 런닝 부스에서 뛰어야 했다
어젯밤에 읽어낸 시들을 지우려고 뛰어야 했다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처음이었던 그 감정을 부인하는
나를 부인하려고 뛰어야 했다
아버지의 남방에서 나는 냄새를 그러쥐고 삼륜 오토바이에서
그가 모는 데로 도로를 질주하는 지하도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던 삽교와 시장 그가 보여주지 못한 비눗방울들이 가득 떠 있는 광장에서
나는 에러가 난 채로 뛰어야 했다
사랑에 마침표를 찍지 못해 뛰어야 했다
새 한 마리의 병든 죽음을 바라보며
그가 싸낸 검은 물똥 자국을 지우려고
연인과 뒤뜰에 묻어줬던 햄스터 새끼들을 지우려고
뛰어야 했다
염을 하던 당신의 등에 가득한 멍 자국을
지우려고
나는 뛰어야 했다
다가오는 벌판을 끌어안고
벌처럼 세상의 모퉁이 그 궁둥이들을 쏘며
나는 데워진 냄비의 들들 거리는 소리처럼
자명종의 뻐꾸기 새처럼
뛰어야 했다
몽당연필이 되기 위해
손에 쥔 연필을 부러뜨리기 위해
너의 옆에 눕기 위해
오후의 빛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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