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까,
중학교 때 안경을 쓰다 안 쓰는 교실로 들어오는 여자 영어
선생님이 노트북으로 틀어준 '럭키 루이'와 '크리스는 괴로워'는 그때는 그저 웃어넘기기에 적당했던 시트콤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을 가장한 어른이 될 사람들의 사춘기 한 편이었다.
어디서도 글을 적어내는 지금의 나는 '제목이 없습니다'란 노트에 또 뭐라 뭐라 써놓고 그것을 꺼내기엔 부족한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사랑은 늘 내가 바라는 적당한 계절엔 찾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무용하고, 원망도 조금 섞인 모서리가 깨진 두부가 되어버렸다.
이번 해는 흉작인 것 같은데, 다음 해는 좀 덜 망할 수 있으려나. 산골짜기 마지막 화전민으로 남아있던 다큐 속의 까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누군가 건넨 새해 인사를 저리 치우고 내가 적어야 할 새해 인사를 꺼내본다. 늘 미리 이별하고, 미리 인사를 하는 그 사람 덕분에 아직 하루가 더 남은 올해 이 새벽에, 나도 미리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꺼냈던 생각들의 일부를 끄적이며 건네본다. 나는 나의 올해에는 불을 지르고 싶다.
안녕 루이. 안녕 크리스. 내년에는 내가 그때와 같이 웃으면서 너희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사람보다 나에게 적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당신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고 노력할 테니. 너희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