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이발소

by 도고



단면으로 인쇄된 종이의 뒤편은 우리가 꺼내지 못한

세계들이 백으로 가득 찬 것 같아서 나의 엄지의 지문은

앞면에서 뒷면을 자꾸 투과하려 만지고

당신이 쏟지 못한 비겁에 갇힌 말들은 또 무엇일까

문이 닫힌 목화 이발소의 내려진 셔터를 보며 불이 꺼진

어둠이 가득한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보며

자르지 못한 뒷머리를 생각한다 그러자 잔뿌리가 내리고

나는 양파처럼 한 겹 두 겹 옷을 입는다 거리엔 아직 굽지 않은

생고기의 두터운 비린내들로 가득 차 있고

나는 떨어진 당신의 외투의 단추를 생각한다

그것이 내 호주머니에 있는 것만 같은 금요일 저녁 일곱시의 기분

산내들 우린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얼어버린 곡괭이만 몸을 버리고 머리를 가진 채 나의 등을 찍는다

나는 언 땅이 되어 발자국 모양이 얼어붙은 채로 자꾸만 공중 위로 떠올라 바람을 타고 사라지는 말들에 스쳐 닿는다

찾아올 이 한 밤 가득히 눈이 내린다면 멸종된 것들을 불러다 앉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아직 터지지 않은 차가운 목화솜을 품에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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