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름다운 시

by 도고



나는 시를 쓸 거야


아-주 아름다운 시를 쓸 거야


밝게 들여다보이는 젊음을 쓸 거야


고독을 노래할 땐


기타는 치지 않을 거야


대신, 휘파람을 불 거야


휘-휘 하고


고요함 몰아내고 구름의 이름을 불러


부는 바람에 장단을 맞출 거야


옆집에서 피아노 소리 들려오면


흩어지는 존재들을 끌어모아


화음을 만들 거야


비가 오면


두드리는 창문 밖


손을 내밀 거야


번진 로션 냄새


빗물로 적실 거야


그 향기 지워지면


츄리닝 바지춤에 스-윽 하고 문질러 닦을 거야


안테나 라디오 지직 거림 그리울 땐


정수리에 검지를 세우고


외우던 주파수


버튼을 눌러 채널을 켤 거야


디제이 던지는 사연에 감상이 떠오르면


먼지 쌓인 키보드 대신


붓 펜을 들 거야


먹물이 종이 위로 번지면


눈을 감고


그 스며듦 간직할 거야


그러다 스르름 졸음이 몰려오면


새근거리는 숨고리


듣다 잠이 들 거야


고양이가 갸르릉 울어대면


잠깐 깨어


발칙한 걸음걸이


사뿐사뿐,


흉내 내어 볼 거야


깜박이는 전등


시곗바늘 곧게 춤을 추면


힐끔힐끔,


그 초조함을 느낄 거야


기다리는 이가 있어


초조함은 잠시 넣어두고


느긋함을 꺼낼 거야


젖은 바지춤 마를 때쯤이면


비는 그칠 거야


그러면


기다리는 이 마중 나갈 생각에 내놓은 우산


기쁜 마음으로 접어둘 거야


어디쯤 왔을까


동네 골목


그를 맞이하는 가로등


아마 주황빛으로


발걸음을 물들일 거야


골목길 돌아 나오는


315번지


마트 전단지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페인트 벗겨진 녹색 양철 대문


문틈으로 목줄 끌리는 사나운 개는


낯선 이에게 컹! 컹! 짖어대고


아마 그는 소스라치게 놀랄 거야


여기까지 그가 오기에는


꽤나 긴 버스 노선이 있었을 거야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않은 그는


아마 걱정했을 거야


일기예보를 챙겨본 게 언제쯤일까


아직 어색한 휴대폰으로


내일의 날씨를 알아볼 거야


"4월 15일 온종일 맑음"


오늘이 봄비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을 거야


'내일은 장롱에서 스웨터를 꺼내 입어야지'


일상 냄새 찌든


무거운 코트 벗어버릴 생각에


아마 흐뭇해할 거야


그리곤 자리를 옮겨 앉아


버스 창문을 조금 열고


바퀴 소리와 엔진 소리 얽힌


비의 음성들을 듣는 거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구슬픈 그 시절 노래


흥얼거리며


창가에 기대어


지나온 청춘을


선명하게 떠올릴 거야


어쩌면


버스가 멈추지 않길


내심 바랄 거야


빨간 벨이 지-잉 하고 문이 열리면


바퀴 달린 향수의 괴물이


차창 밖으로 그를 토해낼 거야


젖은 아스팔트 바닥


하지만 비는 그쳐서


더 이상 염려하진 않을 거야


찰박찰박, 비릿한 흙냄새가


그의 코를 매만질 거야


페리카나 치킨


어느새 비닐봉지에 담겨


치킨 무 하나를 더 담고


지갑을 쩌-억 벌릴 거야


제법 무거운 두 손에


가벼워진 지갑


하지만 그는


흐뭇해할 거야


양철 대문을 지나 집 앞에 다다르면


아직 켜져 있는 불


가슴이 따듯하게 아려올 거야


열려 있는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


기대어져 있는 우산


자꾸만 그의 눈에 밟힐 거야


조용히 뒤축이 찌그러진 구두를 벗고 들어가


크레파스로 색칠한 그림이 그려진


방문을 열면


귀여운 막내아들


베개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을 거야


베개를 살며시 뺏어


머리를 조심히 들어 올리고


침대 위에 베개를 얹어


받힌 손 스르륵 뺄 거야


발밑에 차여진 이불


두근거리는 심장까지 끌어올리고


헝클어진 머리


소중하게 쓸어넘기고


보드라운 볼에


사랑을 담아


오늘의 고됨을 담아


입을 맞출 거야


까끌까끌한 수염


잠든 아이는 그 와중에도


눈살을 찌푸릴 거야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깜박이는 전등 주말로 넘기고


치킨을 냉장고에 넣어


안방으로 들어오면


스웨터가 침대 밑에


곱게 개어져 있을 거야


그 위엔


반으로 접힌 하얀 종이가


지친 그에게 선물이 될 거야


펼치면


색연필로 곱게 칠한


시가 있을 거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아름다운 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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